제여란 “작업 앞에 있을 때 모든 건 아무것도 아니다”

전성민 기자2019-03-15 00:00:00
4월10일까지 개인전 ‘어디든 어디도 아닌(Usquam Nusquam)'

[제여란 작가. 사진=전성민 기자 ]

“생로병사, 이별 같은 것들에 출렁인 적이 있었다. 현재는 작업을 하면 모든 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이렇게 된지 오래됐다.”

끓임 없이 변화하는 내면의 에너지를 그림으로 표현하기 위해 작가 제여란은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 스퀴지(고무밀대)와 한 몸이 돼 완성한 작품은 특별했다.

313아트프로젝트는 오는 4월10일까지 제여란의 개인전 ‘어디든 어디도 아닌(Usquam Nusquam)’을 연다.

작가의 대표적인 시리즈 ‘Usquam Nusquam’이 대작에서부터 소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이즈로 전시됐다. 작가가 30여 년간 천착해온 작업 세계를 집약하여 보여준다.

스퀴지는 작가 제여란의 그림을 특별하게 하는 중요한 도구다. 투박해 보이지만 섬세하다. 그는 “스퀴지는 신체의 확장이라고 봐도 된다. 약간 불편한 도구인데, 저항감을 즐긴다”라며 “1m~1m50cm 크기인 스퀴지는 톱으로 1cm까지 잘라서 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부드러운 곡선과 날카로운 직선을 표현하기에 좋다”고 설명했다.

스퀴지로 그린 추상화는 특별했다. 제여란 작가는 “궁긍적으로 내 그림이 통용되는 그림이 아닌 시선이 머무르는 어떤 광경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전시회를 채운 그림들은 정말 다양했다. 수많은 변수들의 결과다. 제여란 작가는 “조금 전에 있었던 일, 내 안에서 듣고 싶은 재즈, 방금 본 스카프 등 사소한 것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BTS 음악도 자주 듣는다”며 “제일 큰 영향을 주는 것은 계절이다. 여름의 장마는 굉장히 강한 변수다”고 설명했다.

작가에 따르면 색은 순간적인 운동 속에서 자체적인 흐름을 풀어낸다. 밝은 색이 상승의 기세를 이끌어갔다면, 그 다음에 사용되는 어두운 색은 하강의 흐름을 이어가는 식이다. 작가의 호흡에 따라 펼쳐진 색채의 향연은 감정의 솟음과 가라앉음이 반복되는 인간 내면의 은유이자, 고요함 속에서도 끊임없이 움직임이 일어나는 자연 섭리의 표출이다.

작품을 완성하는 작업은 정말 길고 힘겨운 일이다. 제여란은 “순간적으로 판단을 잘못하면 처음부터 다시 한다. 조금만 더 하면 반짝 거릴 것 같았는데 잘못해서 10여년 정도 만진 그림도 있다. 그림과 씨름을 하며 관계를 살려 나가기 시작했다. 성공적으로 이뤄져 그 그림이 나중에 늠름한 친구가 됐다”며 활짝 웃었다.

제여란 작가는 매년 12월 지난 1년 동안 그린 그림을 사진으로 남긴 후 뒤집어 놓는다. 그림이 그림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그는 “작업은 나를 힘들게 해서 할만하다. 내가 극복해야 할 일이다. 힘든 것만 있는 게 아니라 찬란한 순간도 있었다. 희열이 오래 간다”고 말했다.

[사진=전성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