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안동과 경주는 한국인의 눈으로 바라봐도 경이롭고, 감동 넘치는 스폿(지점)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우리나라가 생경한 외국인의 눈에는 더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만 외국인으로서 안동과 경주를 여행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직 교통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물론 기차역이 있지만, 안동역에는 KTX가 서지 않고, KTX 정차역인 신경주역에 내린 후에도 경주 주요 지점인 보문관광단지까지는 2~30분의 시간이 걸린다.
낯선 땅에 이제 막 발을 내디딘 외국인 여행객이라면 엄두도 못 낼 자유여행일 게다. 좀 더 편한 방법으로 이 아름다운 고장을 여행하는 방법, 어디 없을까 고민한다면 K-트래블버스가 정답이다.
◆2년 전의 추억 안고 떠난 두 번째 K-트래블 버스 투어
당시, 기자까지 포함해 총 9명의 관광객이 K-트래블 버스에 몸을 싣고 전남 여행을 떠났다. 여행의 동반자라는 새로운 인연의 끈으로 맺어진 우리는, 처음의 낯섦을 넘어 어느덧 서로를 의지하고 챙기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1박2일간의 짧은 여정이었지만 2년이 지난 지금도 소중한 추억으로 가슴 속에 남아 있는 그 여행. 비록 외국인 여행객은 아니지만, 언젠가 기회가 되면 다시 한번 이 여행상품을 이용해보고 싶다는 막연한 마음을 갖고 있었던 내게, 운명처럼 K-트래블 버스를 탈 또 한 번의 기회가 주어졌다.
사실 K-트래블 버스는 외래관광객의 지방 방문 불편사항(언어, 교통편 등)을 해소하고,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서울시 주관으로 개발한 외국인 전용 버스여행 상품으로, 하나투어가 운영 중이다.
쾌적한 숙소와 가볼 만한 관광지, 수준 높은 가이드 서비스까지 제공돼 이용객의 만족도가 꽤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여행할 곳은 경북 코스. 안동 하회마을 탈 만들기 체험과 경주 첨성대, 불국사, 동궁과 월지, 영천 한의마을, 영천 와이너리 체험 등 유명한 지역 여행 스폿을 둘러볼 수 있는 알짜배기 코스지만, 이번만큼은 이용객의 성향을 감안해 약간의 새로운 여행 코스로 꾸려 여행을 떠나게 됐다.
◆종가의 품격을 담은 안동 하회마을
“자, 이제 목적지 안동 하회마을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에서 식사하신 후 하회마을 곳곳을 둘러보기로 하겠습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우리는 간고등어에 파전, 안동찜닭이 푸짐하게 차려진 가족 상차림 한 상을 거하게 받아 맛있게 먹었다.
네 명이 한참을 먹어도 줄지를 않는 안동의 후한 인심을 맛본 후 본격적으로 하회마을 나들이에 나섰다.
안동 하면 자연스레 하회마을을 떠올릴 정도로, 하회마을은 안동 대표 여행지다.
오래전부터 전통가옥들이 모여 사는 마을 형태가 지금껏 유지‧보존되고 있는 이곳은 한국의 전통마을 문화를 잘 보여준다고 하여 지난 2010년 경주 양동마을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기도 하다.
하회마을 안에는 지금도 이곳을 삶의 터전으로 자리 잡고 살아가고 있는 주민들과 함께 마을 곳곳에 유서 깊은 오래된 고택들이 많이 남아 있다. 서양의 고성 못지않은 기품을 뽐내는 고택들이 시선을 한 번에 사로잡았다.
충효당 건물 뒤쪽에는 서애 류성룡 선생의 저서와 유품들을 전시해 놓은 영모각이 있고, 마을 골목 하나 사이로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의 건축양식이 공존하는 가옥, 양진당이 충효당과 마주 보고 있다.
마을을 모두 둘러보고 돌아 나오는 길에 소나무가 빼곡히 들어찬 솔숲이 펼쳐졌다. 이곳이 만송정이란다.
부용대에 올라 하회마을 전체를 내려다보는 모습이 가히 장관이었다.
◆신라의 기품이 넘치는 경주
한반도 동남쪽 변방에 자리해 기어코 삼국통일을 이루어 낸 당찬 나라, 신라. 기원전 57년 알에서 나온 박혁거세를 시작으로 935년 경순왕에 이르기까지 56명 신라의 왕이 수도로 삼은 경주. 이 유구한 역사의 이야기를 종이 한 장에 풀어낼 수 없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이 정도로만 얘기하기로 한다. 경주는 지난 200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고, 경주 석굴암과 불국사는 이보다 앞서 1995년 이름을 올렸다는 것. 이것이 대한민국 최초였다는 것.
“서출지는 저도 처음 와보는데, 정말 고즈넉하고, 아름답군요.” 동행한 가이드가 말했다.
이곳에는 설화 하나도 전해진다.
당시의 유물은 아무것도 남지 않았고 조선 시대에 만들어진 이요당이란 정자가 연못 가장자리에 세워져 있다.
조선 현종 5년(1664)에 임적이라는 사람이 못가에 건물을 지어 글을 읽고 경치를 즐겼다고 한다. 지금 이 건물은 연못 서북쪽에 소박하면서 우아한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다.
꽤 넓은 연못에는 요즘 수련이 활짝 피어 있어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수줍게 피어난 분홍빛 연꽃, 주변에 가득한 배롱나무를 감상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연못을 중심으로 한 바퀴 천천히 걸으며 사색하다 보니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했다.
궁궐 안에 큰 연못을 파고 또한 궁궐 남쪽 문천(蚊川) 위에 월정(月淨)과 춘양(春陽) 두 다리를 놓았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제9권 경덕왕 편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문천 위에 월정교와 춘양교를 놓았다는 기록이다. 신라 왕궁과 남산을 잇던 다리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춘양교는 ‘일정교’라고도 불렸다. 달처럼 깨끗하고 해처럼 따뜻한 아름다운 다리란 뜻이다.
월정교는 최초 건설된 이래 고려 시대 여몽전쟁(1231~1259)을 겪을 때까지 520년 이상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소실됐다. 소실된 시기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월정교 아래 강바닥에서 불탄 기와와 목재 부재가 다수 출토돼 월정교가 불타 없어졌을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월정교의 정확한 모습은 모르지만, 상상과 추측을 바탕으로 복원사업을 시작했고, 10년에 걸쳐 공사를 거듭, 지난해 민간에 개방됐다.
한번 불타 사라졌다가 복원 사업으로 다시 태어나는 등 우여곡절을 겪으며 오늘날 그곳을 찾는 이들에게 아름다운 야경을 선사하기까지 그 자리를 한결같이 지켜온 월정교다.
조금은 새로운 여행 코스를 기획해 떠난 이유는 외국인 여행객의 입장이 되어 이 여행을 즐겨보자는 마음에서였다. 새로운 곳, 가보지 못했던 곳에 한 발 내디뎠을 때의 짜릿함, 그 어떤 즐거움과도 비교할 수 없다. 이게 바로 여행의 참맛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떠난 K-트래블버스를 통한 두 번째 여행은 이번에도 만족이었다. 그날따라 날씨가 무덥고 습해 온몸은 땀범벅이 되었지만, 그 여행은 우리를 연신 웃음 짓게 했고, 생경한 곳으로의 여행은 또 하나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았다.
선선한 가을바람을 타고 떠나는 낯선 곳으로의 여행, 생각만 해도 즐겁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