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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작품 속 감성 여행지①]무소유의 삶을 기억하다…성북동 길상사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기수정 기자
2019-10-01 14:55:56
가을은 흔히 독서와 문학의 계절이라 부른다. 가을이 되면 들판에서 곡식을 거두어 들여 풍성함을 채우듯, 우리는 책 속에서 지식을 거두어 들여 마음을 풍요롭게 채운다.
책을 읽는데서 그치지 않고 문학작품 속의 장소를 찾아 감성을 채우는 것도 가을의 정취를 만끽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마침 한국관광공사(사장 안영배)는 가을을 맞아 한국문학의 정취가 묻어나는 감성 여행지 5곳을 가볼만한 곳으로 선정했다.

 

길상사의 극락전[사진=한국관광공사 제공]

서울 성북구에 자리한 길상사는 1997년 12월에 창건해 20년 남짓 된 절집이다.

역사는 짧지만 길상사를 찾는 이들에게 전해지는 이야기가 많다. 길상사는 원래 대원각이라는 요정이었다.

고급 요릿집이 절집으로 탈바꿈한 데는 법정 스님과 김영한의 이야기가 있다.

법정 스님은 1932년 전남 해남에서 태어나 1956년 효봉 스님의 제자로 출가했으며, 2010년 길상사에서 입적했다.

《무소유》 《맑고 향기롭게》 《산방한담》 《오두막 편지》 《버리고 떠나기》 등 스님이 쓴 책이 많은 독자에게 감명과 울림을 전했다.

대원각을 시주한 김영한도 그렇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큰 감동을 받아 시주를 결심했다. 건물 40여 채와 대지 2만 3140㎡로, 시가 1000억 원이 넘는 규모였다.

대원각을 시주하려는 김영한과 무소유가 삶의 철학인 법정 스님 사이에 권유와 거절이 10년 가까이 이어졌다.

결국 법정 스님이 시주를 받아들이고, 2년 동안 개·보수를 거쳐 길상사가 탄생했다.

길상사가 승보사찰인 송광사의 말사인 점이 재미있다. 전남 순천 송광사의 말사가 어떻게 서울에 있을까? 말사는 지역과 상관이 없고, 법정 스님이 송광사 소속이기 때문이다.
법정 스님의 흔적은 길상사 가장 높은 곳에 자리 잡은 진영각에 있다. 전각에는 스님의 영정과 친필 원고, 유언장 등이 전시된다.

법정 스님은 “의식을 행하지 말고, 관과 수의를 준비하지 말며, 승복을 입은 채로 다비하라”고 유언했다. 유골은 진영각 오른편 담장 아래 모셨다. 진영각 옆에는 생전에 스님이 줄곧 앉은 나무 의자가 흔적을 대신한다.

김영한은 기생 교육기관이자 조합인 권번에 들어 수업을 받고 진향이라는 이름으로 입문했다. 1950년대 청암장이라는 별장을 사들여 운영하기 시작한 대원각은 군사독재 시절 삼청각, 청운각과 함께 3대 요정으로 이름을 떨쳤다.

김영한은 대원각을 시주할 때 “그까짓 1000억 원은 백석의 시 한 줄만 못하다”며 한 치도 미련을 두지 않았다고 한다.

여기서 백석은 그녀가 사랑한 시인 백석이다. 백석은 김영한에게 자야라는 아호를 지어줄 정도로 아끼고 사랑했다. 하지만 사랑은 결실을 맺지 못하고 백석은 만주로 떠났다.

백석과 김영한의 만남은 여기까지다. 한국전쟁으로 남과 북이 나뉘며 서로 생사를 알지 못한 채 삶을 마감했다. 백석은 1996년 북한에서, 김영한은 1999년 길상사 길상헌에서 눈감았다.

길상헌 뒤편에는 시주길상화공덕비가 있다. 길상화는 길상사 창건 법회 때 법정 스님이 염주와 함께 전해준 법명이다. 공덕비 옆 안내판에 김영한의 생애와 백석의 시 한 편이 새겨졌다.

“가난한 내가 /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로 시작하는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다. 백석을 그리워한 김영한은 “내가 죽거든 눈이 많이 내리는 날, 유골을 길상사에 뿌려달라”고 유언했다. 김영한은 백석의 시에 등장하는 나타샤가 되고자 한 게 아닐까? 시를 읽고 있으니 김영한과 백석의 사랑이 이곳에서 이어지는 듯하다.

이제 길상사를 천천히 둘러보자. ‘삼각산길상사’ 현판을 내건 일주문으로 들어서면 경내다. 길상사에는 두 가지 아름다움이 있다. 걸어 올라가다 보면 키가 큰 관음보살상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천주교 신자인 조각가 최종태가 종교 간 화해와 화합을 염원하며 기증한 작품이다. 창건 법회 때 김수환 추기경이 축사를 했고, 석가탄신일과 성탄절에는 서로 축하 현수막을 내건다. 언제 봐도 흐뭇하고 아름다운 모습이다.

길상사 경내는 울창하지 않아도 숲의 느낌이 제법 진하고, 잘 가꾼 정원을 보는 듯하다. 보호수를 비롯한 고목이 많고, 철 따라 들꽃이 피고 진다. 곳곳에 있는 벤치도 이색적이다.

고목이나 계곡과 어우러진 숲에 놓인 벤치에서 길상사를 찾은 사람들이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운다. 법정 스님은 길상사에 불교 서적과 일반 서적을 갖춘 길상사도서관을 만들었다.

도서관은 2016년에 새롭게 단장하면서 북카페 ‘다라니다원’으로 운영된다. 휴식과 독서 기능을 갖춘 복합 문화 공간으로, 차 한잔 마시면서 법정 스님의 글을 읽어도 좋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서울 정릉(사적 208호)은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의 무덤이다. 정릉은 도성 내에 조성됐다가 태종 즉위 후 이곳으로 옮겨졌다. 현재 정릉은 내부 공사 중이어서 방문하기 전에 문의하는 것이 좋다.

길상사에서 내려가면 선잠단지를 지나 큰길 건너편으로 서울 성북동 최순우 가옥(등록문화재 268호)이 있다. 우리 문화유산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을 널리 알린 혜곡 최순우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저자로 유명하다.

앞마당에는 소나무, 모란, 산사나무 등이 있고 사랑방과 안방, 대청, 건넌방이 ‘ㄱ 자형’으로 이어진다. 사랑방 위에 ‘두문즉시심산(杜門卽是深山)’ 현판이 걸렸다. 문을 닫으면 이곳이 곧 깊은 산중이라는 뜻이다. 건물 뒤편에는 선생이 쓴 책이 놓인 돌 탁자와 장독이 인상적이다.

덕수교회 안에는 1900년대에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성북동이종석별장(서울민속문화재 10호)이 있다. 길 건너편에 자리한 상허이태준가옥(서울민속문화재 11호)은 《문장 강화》를 쓴 이태준의 옛집으로, 지금은 ‘수연산방’이라는 찻집으로 운영 중이다. 건강한 차 한잔 마시며 시간을 보내기 좋다. 만해 한용운 심우장(사적 550호)은 북정마을로 오르는 중간쯤에 있다. 입구에 들어서면 커다란 소나무 한 그루가 심우장과 어울린다. 조선총독부를 등지고 북향으로 지은 심우장은 민족의 자존심을 상징하는 공간이다.

우리옛돌박물관은 선조들이 빚어낸 돌조각 작품을 만나는 곳이다. 내부 전시실에는 일제강점기에 반출됐다가 환수한 문인석을 비롯해 동자석, 벅수 등이 있다. 표정이나 모습이 달라 하나씩 살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3~4층 야외 전시장은 옥상에서 숲을 따라 1층으로 내려오는 산책로다. 숲 곳곳에 무인석, 미륵불, 염화미소, 탄생불 등 다양한 석물이 있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거대한 민불이 인상적이다.

삼청각에서 산책로를 따라 5분 남짓 오르면 한양도성을 이어주는 숙정문안내소다. 시간을 넉넉히 잡고 창의문으로 넘어가거나, 가까운 말바위안내소를 지나 말바위전망대까지 한양도성 백악구간 순성을 하는 것도 가을 여행으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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