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은 한국이 저성장・고령화・경기부양책 반복으로 국가채무가 급증한 일본과 같은 위험에 직면할 것이라고 5일 진단했다.
일본은 세계 최대 해외순자산 보유국이고 경상수지 흑자도 안정적이기 때문에 국가채무를 버티고 있다. 반면 한국은 정부 빚이 많아지면 대외 신뢰도와 거시경제 안정성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다.
한경연에 따르면 일본은 1990년 이후 세수 부진과 재정지출 확대가 겹쳐 재정적자가 연 30조∼50조엔으로 늘었다. 그 결과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1990년 66.1%에서 지난해 224.2%로 3.4배 뛰었다.
한국은 (통합)재정이 매년 흑자였지만 내년부터 수입 둔화와 지출 급증으로 적자전환해 2023년 50조원 적자로 악화될 것으로 한경연은 내다봤다. 이렇게 되면 국가채무비율이 지난해 35.9%에서 2023년 46.4%로 오를 전망이다.
일본의 GDP 대비 공공복지지출 비율은 고령화사회에 진입한 1970년 5%에서 고령사회에 진입한 1994년 12.9%, 초고령사회가 시작된 2006년 17.3%로 올랐다. 2009년에는 20%를 넘었다.
한국의 고령화 속도는 일본보다 빠르다. 2000년 고령화사회, 2018년 고령사회가 되었고 2025년 초고령사회를 앞두고 있다. GDP 대비 공공복지지출 비율은 2000년 4.5%, 2018년 11.1%로 일본과 추이가 비슷하다.
일본은 경기침체 탈출을 위해 1992~2002년 경기부양책을 12회 실시해 공공투자를 늘리고 소비진작도 도모했다. 그러나 재정적자만 늘고 성장률 회복에 실패했다. 이 기간 투입된 재정이 총 136조엔에 달한다. 기 가운데 59조엔이 도로·항만 등 사회간접자본투자에 쓰였다. 현금과 상품권 배포 대책 등에도 상당액이 들어갔다.
한국은 2013년부터 추경을 반복해 총 60조6000억원을 투입했다. 최근에는 정부총지출(예산)을 2017년 400.5조원에서 2020년 513.5조원으로 113조원 늘리는 등 재정을 확대 중이다. 하지만 민간경제활력 제고효과는 제한이라는 분석이다.
상품수지는 세계교역 부침에 따른 변동이 크기 때문에 투자소득 의존도가 높은 일본의 경상수지 흑자가 한국 보다 안정적이다. 올해 세계교역이 위축되면서 한국의 1~8월 경상수지는 전년동기대비 26.1% 감소했는데 일본은 0.7% 감소에 그쳤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럽 재정위기 등 국제 금융시장 위험이 커지면 일본에서는 자국으로 자금이 유입되고 엔화가 절상된다. 반면 한국은 해외로 자금이 유출되고 원화가 절하돼 외화표시 부채상환부담이 커진다.
추광호 한국경제연구원 일자리전략실장은 “일본은 세계 최대의 해외순금융자산 보유국이고 경상수지흑자가 투자소득 비중이 높아 안정적이며 엔화가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기축통화 대접을 받는 등 경제 펀더멘털이 탄탄하다”라며 “우리가 일본처럼 정부 빚을 많이 지면 대외신뢰도와 거시경제 안정성이 크게 흔들릴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중장기적 관점에서 국가채무가 안정적으로 관리되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정부예산이 성장잠재력을 높이는데 투입되는 지 꼼꼼히 따져보고 예산확대와 관련해 속도조절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