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수정의 여행 in

아라가야부터 현대까지…함안,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함안(경남)=기수정 기자2019-11-11 00:00:00
아라가야 유적 풍성…최근 세계문화유선 신청으로 주목 처녀뱃사공 노래비와 악양루 어우러져 한 폭의 절경 연출 악양생태공원 내 끝없이 펼쳐진 핑크뮬리 '낭만' 그 자체 승마ㆍ경비행기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 즐거움 두 배로 시원하고 얼큰한 국물의 한우국밥 여행객 허한 속 달래줘
무언가에 이끌렸는지 모르겠다. 애초에 가을 바다를 보러 갈 심산이었지만 이름조차 낯선 경남 함안으로 계획에도 없던 여행을 떠났다. 마치 운명처럼, 이미 예정돼 있었던 것처럼······.

◆아라가야 역사가 오롯이···말이산 고분군
 

말이산 고분군은 훌륭한 산책 코스로도 주목받고 있다. [사진=기수정 기자]

함안? 이곳이 대단한 역사적 가치를 지녔다는 것은 꿈에도 몰랐다. 드라마 미스터 션사인 등장인물인 ‘함안댁’을 통해 그런 지역이 있다는 것만 어렴풋이 알았을 뿐이다.

함안은 약 1500년 전 소멸한 것으로 추정되는 안라국(安羅國), 즉 아라가야 도읍이었다. 지정학적으로 남쪽 바다와 인접해 일찍부터 금관가야와 함께 일본과 왕래가 잦았다.

함안은 최근 들어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문화재청과 군이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아라가야 여러 유적을 신청하면서부터다. 여러 유적 중 말이산 고분군은 아라가야 국세가 얼마나 강대했는지를 말해주는 귀중한 유적이다.
 

박물관 상징 '수레바퀴모양 토기'가 박물관 입구에 확대 전시돼있다. [사진=기수정 기자]

우선 아라가야 역사를 한눈에 알 수 있는 함안박물관으로 향했다.

야외에는 고인돌과 선돌, 실제 크기보다 확대된 수레바퀴 토기 등이 전시돼 있었다. 당시 첨단 세라믹 제조기술이던 토기를 비롯해 비늘갑옷, 투구, 검 등 다양한 출토 유물을 볼 수 있었다. 대부분 부장품과 순장품에서 나온 것들이란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에서 발굴‧조사한 말이산 고분군 덧널무덤과 돌방무덤도 고스란히 재현돼 있었다.

박물관에서는 올해 고분군 45호분에서 출토된 상형토기 4점을 오는 18일까지 상설전시실에서 전시한다. 아라가야 화려한 토기 제작기술이 반영된 집모 양토기(家形土器), 사슴모양 뿔잔(鹿形角杯), 배모양 토기(舟形土器), 등잔모양 토기(燈盞形土器)를 둘러보며 화려한 토기 제작기술을 가진 아라가야에 대한 관심을 엿볼 수 있다. 이후에는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자리를 옮긴다.

◆남강 따라 걷고 처녀 뱃사공 애환 느끼고
 

악양루에서 바라본 남강 [사진=기수정 기자]

악양나루로 향하는 길, 군청 관계자가 노래 한 구절을 흥얼거렸다. “낙동강 강바람이 치마폭을 스치면.” 익숙한 멜로디였다. 질세라 맞받아쳤다. “군인 간 오라버니 소식이 오네~.”

1959년 가수 황정자가 발표한 ‘처녀뱃사공’은 지난 수십 년간 불린 국민 애창곡이다. 유랑극단 단장이자 가수 윤복희 부친인 윤부길 선생이 작사했다. 6·25전쟁 당시 악양나루에서 군대 간 오빠를 대신해 나룻배를 저으며 생계를 꾸렸다는, 애달픈 처녀뱃사공 사연을 노래로 만들었단다. 노랫말과 그 속에 담긴 이야기가 함안 여행을 더 풍성하게 했다.

악양루 테크로드를 걷기 전 만난 처녀뱃사공 노래비에는 “늙으신 부모님을 내가 모시고”, “오라비 제대하면 시집보내마”, “에헤야 데헤야 노를 저어라 삿대를 저어라”라는 노랫말이 새겨져 있었다. 노래를 흥얼거리다 보니 어느새 그 시절 풍경이 머릿속에 그려지면서 이곳이 더 의미 있게 다가왔다. 

이제 악양마을 북쪽, 남강을 끼고 이어지는 절벽을 따라 나 있는 데크로드를 걸었다. 강을 굽어보는 절벽 위엔 악양루가 서 있었다. 조선 후기 철종 때인 1857년 처음 세워진 정자로, 1960년대에 중수됐다. 

아담한 규모지만 법수면 제방과 넓은 들, 굽이 휘돌아 흐르는 남강 물줄기가 한눈에 들어오는 절경을 품고 있었다. 마침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기 시작했다. 파랗던 하늘과 강이 황금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석양은 동양화 한 폭이 따로 없었다.

악양루에서 멀지 않은 악양생태공원 안은 핑크뮬리 물결이 끝없이 펼쳐졌다. 매혹적인 분홍 물결이 이루는 낭만에 오랜만에 마음이 설렜다. 하늘에선 여전히 석양이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지금까지 본 석양 중 가장 매혹적이었다.

◆말 탈까, 경비행기 탈까···함안 여행 두배로 즐기는 법
 

승마체험을 즐기는 여행객 [사진=기수정 기자]

가을 정취에 흠뻑 빠진 함안은 풍광만 훌륭한 곳이 아니었다. ‘탈 것’에 의지해 함안을 경험할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이 꽤 다양했다.

드넓은 부지에 마사와 실내외 승마장, 방목장 등을 두루 갖춘 함안군 승마공원으로 향했다. 공원 입구에 조성된 조형물, 잔디로 깔끔하게 정비된 승마장 전경이 아름다웠다.

승마와 말 먹이주기 체험, 마차 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경험할 수 있었다. 아이들이 줄을 서서 기다릴 만큼 인기 콘텐츠로 자리매김한 스크린 승마체험은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했다. 승마체험을 무서워하는 이를 위해 승마장에는 고급스러운 마차도 마련돼 있었다. 고풍스러운 영국풍 마차를 타고 잠시 중세시대 유럽 귀족이 돼보는 기분을 느껴볼 수 있단다. 

경비행기를 타고 하늘 드라이브를 즐기는 것도 함안 여행에서 누리는 특별한 경험이다. ​ 아름다운 함안 풍경을 하늘에서 두 눈에 담을 수 있는 덕이다.

악양둑길 비행장에 모인 경비행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은 이미 두근거렸다. ‘부르릉’ 소리를 내며 프로펠러가 돌고 땅 위를 미끄러지던 경비행기가 하늘로 날아오를 때는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시원한 국물·얼큰하면서도 담백한 국밥···대구식당
 

대구식당 국밥[사진=기수정 기자]

아름다운 풍광과 유구한 역사문화를 품은 함안은 자랑거리가 또 하나 있었다. 마음을 달래는 음식이었다. 된장 샤부샤부부터 왕갈비, 명태전에 이르기까지 입맛을 당기는 음식이 무궁무진했다. 하지만 꼭 맛봐야 할 것은 따끈한 국밥 한 그릇이었다.

지역 주민 한 분이 대구식당을 추천했다. “함안에 왔는데 왜 대구식당에 가나요?”라고 물었더니 “일단 가 보시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대표 서민음식 국밥. 과거 장이 서는 날이면 사람들은 어김없이 국밥집에서 주린 배를 달래곤 했다. 한 번에 대량으로 준비해서 많은 사람이 먹을 수 있으니 국밥보다 좋은 요깃거리는 없었다. 그렇게 함안 한우국밥촌이 생겨났다.

대구식당은 한우국밥촌에서 가장 오래된 곳이다. 오래전 장터 국밥집들이 하나둘 문을 닫기 시작했지만, 이 집만 50년째 함안 장터국밥 명맥을 잇고 있었다. 대구에서 함안으로 시집 온 아낙이 집 한쪽에서 국밥을 말아 팔았다. 호구지책으로 시작한 것이 대구식당 역사다. 처음에는 장날에만 문을 열고 국밥을 팔았다. 장이 서지 않는 지금은 여느 식당들처럼 영업을 한다.·

대구식당 국밥은 늘 인기 만점이지만 요즘처럼 찬바람 불 때 그 진가를 발휘한다. 한우 사태·양지·홍두깨살 등 국밥용 소고기를 사다가 3~4시간 푹 끓여 육수를 내고 주인장이 직접 담은 된장과 간장으로 간을 맞춘다. 신선한 선지도 들어간다. 국밥이나 국수 중 선택할 수 있고, 둘 다 먹고 싶으면 ‘짬뽕’을 주문하면 된다. 

주문하자마자 스테인리스 그릇에 밥을 퍼서 뜨거운 국물을 부었다 따르기를 반복해 먹기 좋은 온도를 맞춰주었다. 한 숟가락 듬뿍 떠서 입에 넣는 순간, 얼큰하면서도 시원한 국물에 속이 뻥 뚫리는 느낌이 들었다. 숟가락질이 멈춰지지 않았다.

시작은 소소했지만 큰 행복을 안겨주었던 함안 여행. 아직 경험하지 못한 것이 많았다. 어두운 밤하늘을 환하게 밝히는 무진정 낙화도 보지 못했고, 달콤한 함안 수박도 맛볼 수 없었다. 혹독한 겨울을 무사히 지내고 난 후 봄이 되면 함안에 다시 가겠노라.
 

햇살에 비친 대나무 실루엣이 감성적이다.[사진=기수정 기자]

승마장에서 만난 말[사진=기수정 기자]

승마장 한 켠에서 만난 당나귀 삼총사[사진=기수정 기자]

가을색을 입은 무진정[사진=기수정 기자]

무진정으로 들어가는 길[사진=기수정 기자]

해질무렵 악양루 가는 길에 만난 풍경[사진=기수정 기자]

악양루에서 바라본 석양[사진=기수정 기자]

봉분이 중첩된 풍경이 인상적인 말이산 고분군[사진=기수정 기자]

먹이(당근)를 먹는 말[사진=기수정 기자]

유럽풍 마차 탑승 체험을 즐기는 여행객 [사진=기수정 기자]

처녀뱃사공 노래비[사진=기수정 기자]

악양생태공원 핑크뮬리를 보러 온 커플[사진=기수정 기자]

악양생태공원 일몰[사진=기수정 기자]

함안에서는 경비행기 체험을 통해 하늘길 여행을 즐길 수 있다.[사진=기수정 기자]

함안에서는 경비행기 체험을 통해 하늘길 여행을 즐길 수 있다.[사진=기수정 기자]

말이산 고분군[사진=기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