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S토커: 관점과 초점

조현아, 항로변경 '무죄' 판결에도 지워지지 않는 '낙인'

김창익 경제산업2부 부장입력 2019-12-08 18:05:00
③한진그룹-6: 2014년 땅콩회항 소동만 기억에 선명...초두효과 2017년 무죄 판결은 여론 관심 멀어진 후...잇따른 악행도 원인 여론 감안한 엄벌은 타당...'회항' 프레임은 벗겨줘야

 

'땅콩리턴'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이 지난 2014년 12월12일 서울 강서구 국토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로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유대길 기자 dbeorlf123@]


①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17년 12월21일 항공보안법 위반 등 5개 혐의로 기소된 조현아(45) 전 대한항공 부사장 상고심에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② 서울고등법원 형사6부는 2015년 5월22일 핵심 쟁점이던 항공보안법상 항로변경죄 여부에 대해 “무죄”라며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③ 서울서부지법 형사12부는 2015년 2월12일 “항공보안법 제42조 항로변경은 공로(空路)뿐만 아니라 이륙 전 지상로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게 합당하다”며 조 전 부사장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

④ 조 전 부사장은 2014년 12월5일(현지시각) 뉴욕 JFK 공항에서 승무원의 견과류 서비스를 문제 삼아 이륙을 앞두고 있던 대한항공 KE086를 램프리턴(항공기를 탑승 게이트로 되돌리는 일)하도록 지시하고 사무장을 강제로 내리게 한 혐의 등으로 2014년 12월30일 구속기소됐다.

이상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이른바 땅콩회항 사건과 그에 대한 1·2·3심 선고공판 결과를 시간 역순으로 나열한 것이다.

일반 사람들은 순서를 거꾸로 읽을 때 이해가 훨씬 빠를 듯 하다. 더 오래된 일이지만 어찌된 게 기억은 그 순서대로 선명하다. 일반 대부분은 조 전 부사장이 대법원에서 땅콩회항(항로변경죄)에 대해서는 최종적으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다. 이 사건이 발생한 2014년 당시 사회부장을 했던 기자조차 2017년 대법원 판결과 그 취지를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다. 무죄판결은 그만큼 세간의 관심이 없는 이슈였다. 실제 기자가 주변 몇몇 사람들에게 질문을 한 결과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은 조 전 부사장이 땅콩회항, 즉 항로변경죄에 대해 유죄 판결을 받고 실형을 산 것으로 기억했다.

이와 관련, 미국 사회심리학자 솔로몬 애쉬의 실험이 생각난다. A와 B 두 그룹 사람들에게 특정인 모씨의 정보를 주고 그 사람에 대한 인상을 물었다. A 그룹에겐 모씨가 '똑똑하지만 게으르다'고 했고, B 그룹에겐 모씨가  '게으르지만 똑똑하다'는 정보를 줬다.

실험결과 A 그룹이 모씨에 대해 훨씬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눈치 빠른 사람들은 알아챘겠지만 두 그룹에 준 정보는 순서만 다르고 내용은 같다. 첫 정보가 나중 정보보다 훨씬 더 강력한 잔상을 남긴다는 애쉬의 이론을 초두효과라고 한다. 잇따른 연구에 따르면 첫 정보를 뒤집으려면 200개 이상의 나중 정보와 관련된 데이터가 있어야 한다. 항로변경이 무죄 판결 받을 사실을 사람들이 인지하려면 땅콩회항 소동이 일어났던 2014년 12월 당시보다 대법원 판결이 난 2017년 12월 보도가 200배 이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조 전 부사장의 땅콩회항 사건은 여론이 추이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결과적으로 이 사건의 핵심은 조 전 부사장에게 항공보안법상 항로변경죄를 적용할 수 있느냐였다. 유죄가 인정되면 최고 10년의 실형이 가능한 중죄였기 때문이다. 

2014년 12월8일 사건 발발 이후 3일이 지나 언론 보도가 시작된 직후 기자와 통화했던 국토교통부 고위담당자는 “항로변경 여부를 따질 사안은 아닌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했었다. 정확한 사태를 파악하기 전에 나온 다소 즉각적인 답변이긴 하지만 램프(탑승장)를 막 출발한 비행기가 육로 17m를 되돌아 왔다는 것으로 항로변경 여부를 따지는 건 무리가 있다는 게 당시 국토부 내부의 지배적인 분위기였다는 것 만큼은 사실이다.

조 전 부사장측의 부적절한 대응으로 여론은 급격히 악화됐다. 보도 직후 당시의 구체적인 상황들이 속속 알져지면서 소동은 ‘재벌 갑질’이란 프레임에 갇혔다. 2013년 라면상무, 신문지 회장 등 고위층의 잇따른 갑질 소동이 전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을 때였다. 사태가 심각해지고 있다는 것을 직감한 국토부는 같은날 전담 조사팀을 꾸리고, 대한항공은 이에 맞춰 사과문을 냈다.

변명 일색 사과는 불에 기름을 붙는 격이 됐다. 폭행과 강요, 업무방해에 맞춰졌던 초점은 여론의 바람을 타고 항로변경 쪽으로 급격히 기울었다. 참여연대는 10일 항로변경 등의 혐의로 서울서부지검에 조 전 부사장을 고발했다.

재판부간의 판결이 엇갈린 것은 ‘항로’에 대한 해석의 차이다. 항로의 사전적 의미는 ‘항공기가 다니는 하늘길’이다. 항공보안법의 입법 취지는 민간항공기에 대한 테러 등의 범죄를 가중처벌하기 위해서다.

1심 재판부는 사전적 의미보다 입법 취지에 포커스를 맞췄다. 민간항공기 안전을 위협하는 범죄를 막아야 한다는 취지를 감안하면 하늘길이 아니어도 땅콩회항을 항로변경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사전적 의미에 철저히 맞춰 항로를 해석했다. ‘항로’의 사전적 정의는 ‘항공기가 통행하는 공로(空路)’이고, 실제 항공기 운항에서 항로가 ‘하늘길’이라는 의미를 벗어나 사용된 예를 찾을 수 없다는 게 대법원 판결 이유다. 재판부는 “항공보안법이 ‘운항 중’의 의미를 ‘항공기 문을 닫는 때부터’로 넓혔다고 해도 그 자체로 죄형법정주의에 따라 엄격히 해석해야 할 ‘항로’까지 본래의 의미에서 벗어나 해석할 수는 없다”며 “법률 문언의 의미가 명확한데도 그 뜻을 벗어나 피고인에게 불리하게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같은 사안에 다른 판단이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재판부가 달라졌다. 여론의 관심도도 차이가 난다.

재판부가 달라져도 죄와 형을 법으로 정하고 유추해석을 금하는 죄형법정주의 원칙이 변한 건 아니다. 결국 단 하나의 차이는 여론의 관심도다. 1심과 2심은 석달 정도 시간차가 있고 대법원 판결은 이로부터 2년이 훨씬 지난 후다. 결과적으로 여론 추이에 따라 항로에 대한 해석이 달라진 것이다. 

재판부는 죄질과 피고의 자세, 당시 여론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결한다. 특정 죄의 형이 1년에서 5년 사이의 실형이라면 판사는 재량에 따라 형량을 정할 수 있다.

다른 죄목, 즉 다른 프레임을 적용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2심과 대법원 판결을 기준으로 보면 1심 판결은 항로를 지나치게 넓게 해석했다. 유추해석인 셈이다.

조 전 부사장 측 변호인은 이같은 상황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항로변경죄에 대해 결국 무죄판결을 받아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과 여론의 상관관계를 비단 조 전 부사장측만 이용한 것일까.

조 전 부사장은 항로변경 혐의에 대해서는 2017년 12월21일 최종적으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여론이 찍은 낙인은 땅콩회항 사건이 기억조차 희미해진 지금도 선명하다. 집단 여론은 강력하지만 막상 찾으면 쉽게 부스러지고 실체가 없다. 여론은 그래서 무책임하고 때론 가혹하리만치 폭력적이다. 최근 유명 연예인들의 잇따른 자살도 집단여론의 결과가 아닌가.

여대생 성폭행 혐의로 2000년 기소됐던 개그맨이자 사업가 주병진씨는 2002년 3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2011년 그는 강호동의 무릎팍 도사에 출연해 "법은 3심이라서 기회라도 있지만, 여론은 한번으로 끝"이라고 했다. 전성기에 비하면 그 사건 이후 그는 사실상 방송 활동을 못하고 있는 상태다. 무죄 판결은 주병진씨의 사회적 생명을 연장하는 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조 전 부사장의 악행을 옹호하자는 취지는 아니다. 악행을 단죄하는 게 중요한 만큼 그에 대한 비판 수위도 적절해야 하고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물론 악의적인 여론을 만든 주인공 또한 조현아 전 부사장 자신이다. 초두효과 이론상 땅콩회항 소동의 이미지에서 벗어나려면 200배 이상의 선행이 있어야 하는 데 조 전 부사장은 그 이후에도 여러번 갑질 논란의 중심에 섰다. 

박창진 당시 사무장은 지금은 직장생활을 정상적으로 하지 못할 만큼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피폐해졌다. 1차 가해자는 분명 조현아 전 부사장이다. 하지만 그를 지금의 상태로 몬 2차 가해자, 3차 가해자가 없다고 할 수 있는가. 있다면 그것은 과연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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