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동방인] “삼성 준법위, 한국형 컴플라이언스 초석돼야”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이범종 기자
2020-02-20 10:11:00

조장훈 한림국제대학원 교수 “검찰·법원, 기업범죄 공통분모 기준 세워야”

이재용 환송심 재판부, 한국에 없는 기업범죄 양형 가이드라인 제시

재판 이후 적극 준법·수사협조가 이익되는 ‘한국형 컴플라이언스’ 과제

 

조창훈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가 17일 연구실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이범종 기자]

기업은 고결할 수 있는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뇌물죄 파기환송심은 기업 윤리와 부패 방지라는 해묵은 과제를 상기시킨다. 조창훈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컴플라이언스 & 윤리 전공 주임교수는 “기업은 고결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기업이 추구하고 사회가 독려해야할 가치는 있다고 말한다. 그 이행이 컴플라이언스(Compliance)다. 컴플라이언스는 기업의 준법감시 노력이다. 법규준수와 윤리가 혼합됐기 때문에 구성원 행동과 의식구조 모두 중요하다.

이 부회장 재판을 맡은 정준영 서울고등법원 형사1부 부장판사가 열망하는 미국식 준법감시체제다. 미국은 19세기부터 기업과 정부, 법원의 끝없는 견제와 연구로 지금과 같은 컴플라이언스가 형성됐다. 기업의 부패 방지 노력을 검찰과 법원이 판단해 기소와 양형 사유에 반영하는 형태로 발전시켜왔다.

 교수는 한국도 금융법과 상법에서 준법감시인과 준법지원인을 두라고 하지만 효과적인 컴플라이언스 체제를 정의하지는 않는다고 지적한다. 공정거래법규상 자율준수관리자제도 역시 마찬가지다. 검찰과 법원에 기업범죄를 하나로 묶어 살필 지침도 없다. 그러니 기업은 적극적인 자정노력에 대한 일관된 감형이나 기소 유예를 기대할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법원이 미국식 준법감시제도를 요구하고 삼성은 독립기관인 준법감시위원회(준법위)를 출범시켰다. 이후 법원은 처음 방침과 달리 준법위 평가결과를 양형 사유에 반영할 움직임을 보였다. 특검의 반발과 시민사회의 ‘법경유착‘ 비판이 일자 법원은 14일로 예정된 재판을 무기연기했다.

◆준법위 ‘재판용’ 평가절하 대신 컴플라이언스 계기 삼아야

미래에셋증권 컴플라이언스본부 출신인 조 교수를 찾은 이유는 6일 재판부가 특검과 피고인에게 의견서를 내라며 던진 3가지 물음 때문이다. 조 교수라면 척박한 한국 컴플라이언스 환경을 절감한 정준영 부장판사의 고민을 읽고 답할 수 있다고 봤다.

법원의 첫 질문은 ‘준법감시제도 취지 전반에 대한 의견’이다. 조 교수는 “준법위 설립에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면서도 “컴플라이언스에는 내부지향과 외부지향 측면이 있는데 내부지향적 모습을 덜 갖춘 상태로 급조한 티가 난다”고 말했다. 복잡한 기업 내부 의사 결정을 파헤쳐야 할 위원회에 비전문가들이 모였다는 뜻이다.

“컴플라이언스는 기업 내부 문제 먼저 해결하고 겉에 보이는 모습을 고려해야 하는데 경영위원회, 감사위원회, 거버넌스위원회 등 다른 위원회와 기능이 중첩되는 모양새입니다. 순수 컴플라이언스보다는 어느 주제에 관해 대표성을 가진 이들을 모아 우호적인 분위기를 형성하려는 것 같아요.”

준법위 출범 전 감시 대상인 7개 계열사 이사회의 일사불란한 안건 통과도 ‘모양’이 아쉽다는 평가다. 

조 교수는 그렇다고 준법위 설립 노력을 평가절하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컴플라이언스 형성 디딤돌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정상참작도 컴플라이언스 기능이라고 법원에 쿨하게 얘기하고, 재계도 삼성을 필두로 제대로 된 준법감시를 시작하게 하는 접근법이 낫지 않을까요.”

준법위가 ‘총수 훈수 위원회’가 될 가능성은 없을까. 준법위원장인 김지형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는 지난달 기자회견에서 이 부회장에게 ‘성역은 없다’는 약속을 받아냈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걱정이 섞인 웃음을 내비쳤다. 조 교수는 “이 부회장이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기존 이사회와 감사위원회가 ‘나(이재용)’를 견제하지 못한다는 고백"이라며 "이사회와 감사위가 오너를 견제 못하는데도 준법위를 세워 잘 하겠다고 하니 (준법위는) 정성어린 조언을 깊이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재판 결과가 향후 기업들에 미칠 영향력이 상당할 것으로 내다본다. 일각에서는 “선고 이후 기업들이 삼성 판결문으로 공부할 것”이라는이야기도 나온다. 검찰과 법원, 행정부가 기업과 컴플라이언스 체제 구축에 나서 실효성 있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부정부패 사건에서 기업은 반대급부를 생각해요. 사법당국에 적극 협조해 기소유예되거나 아예 처벌 받지 않는 미국 사례와 달리 관련 체계가 없는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기대비용을 감수할 수 없지요.”
 

조창훈 교수. [사진=이범종 기자]

◆토양 없는 준법경영 평가... “순서 잘못”

미국은 연방양형위원회가 1991년 권고하고 2004년 개정한 ‘미 연방 기업 범죄 양형 가이드라인’ 7개 주제로 형량을 판단한다. 검찰도 2006년 12월 개정된 ‘멕널티 메모‘로 기업의 컴플라이언스 운영 상황을 살핀다. 기업의 준법 노력과 신속한 책임자 징계, 재발방지 노력과 사법기관에 대한 적극적인 협조 등을 평가한다. 2004년 회계 사기 사건이 일어난 미국 CA사는 적극적인 준법경영 약속을 지켜내 기소를 면했다. 기업과 검찰이 기소유예를 약정하면 독립적인 준법감시인이 이 기간 회사가 아닌 법무부에 준법 노력을 보고해 기소 여부가 결정되는 구조 덕이다. 한국 검찰과 법원에는 이런 지침이 없다.

여기서 정 부장판사의 고민을 엿볼 수 있다. 그의 두 번째 물음은 ‘준법감시제도가 양형사유에 해당하느냐’다.

“법원이 논리적으로 준비되지 않아서 묻는 겁니다. 준법위에 대한 양형 사유를 제시 못하니까요. 준법위 앞에 붙어야 할 단어가 ‘기업 범죄’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지금 이재용 부회장 재판은 기업범죄인가, 개인범죄인가. 개인범죄이나 기업의 이익을 위한 경영전략적인 어쩔 수 없었던 범죄였다는 구분을 재판 당사들이 명확히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미국처럼 사건을 기업 이익을 위한 경영 판단상 문제로 봐달라고 세운 게 준법위입니다. 제가 만약 삼성 측이라면 기업 범죄 감형 요인을 세워 개인 이재용 부회장 양형을 판단해야 한다고 해야겠네요..”

이 질문의 또 다른 문제는 관련 법규 보강과 법원·검찰 가이드라인이 없는 상황에서 나왔다는 점이다.

갑자기 일어선 조 교수가 책장에서 책 하나를 꺼내들었다. ‘삼성을 생각한다’.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 비자금 형성과 사용 과정을 폭로한 이 책은 한때 온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다. “10년 전과 어떻게 다른 삼성을 만들지에 대해 합리적 의구심을 갖게 됩니다.“

이 때문에 컴플라이언스는 기업윤리도 강조된다. 미국 검찰이 기업 범죄 사건에 참고하는 멕널티 메모에는 기업 내 준법경영 장치가 단지 면피용에 불과한 ‘페이퍼 컴플라이언스’인지 살피라는 내용도 담겨있다. 컴플라이언스가 단지 경영진의 입을 보호하는 마우스피스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윤리적 측면 역시 강조돼야한다. “윤리적 측면이 강조되지 않으면 임직원 사찰 기능이 확대될 개연성이 있습니다. 삼성도 이런 문제를 겪었지요. 법적인 판단만 하는 법무팀, 감사위가 하면 윤리 고민을 덜 할 수 있습니다. 준법위는 윤리 준법을 고민해야 합니다.”

◆재판 이후 검찰·사법부 연구 중요

법원의 마지막 질문은 삼성 방어 논리의 시험대다. ‘준법위 운영 상황을 점검할 전문 심리위원 제도가 부적절하다는 특검 측 의견에 대한 반론’이다. 삼성은 이번 대답으로 정 부장판사에게 필요한 논리를 완성시켜 줄 수 있어야 한다.

“삼성은 준법위가 제시한 약속을 잘 지킨다고 하겠죠. 그런데 준법위 활동은 갈 길이 멉니다. 외부 후원 검토는 기업의 기존 업무입니다. 국정농단 이후 대부분 기업 이사회 내 후원금 심사 기능이 강화됐습니다. 기부금 내부통제는 지금 준법위가 해야 할 업무 중 최우선 순위는 아닌 듯 보입니다.”

삼성은 이번 대답으로 정 부장판사 논리를 완성시켜야 한다. “삼성은 미국 연방 기업 범죄 양형 지침의 효과적 컴플라이언스 요건을 입증할 숙제를 풀어야 합니다. 준법위는 그걸 1차로 풀 수 있는 업무를 정의해야 합니다.”

그래도 조 교수는 법원이 컴플라이언스 화두를 던진 점에 의미가 있다고 본다. 정준영 부장판사는 ‘회복적 사법’을 추구한다. 회복적 사법은 피해자와 피고인 양측이 분쟁을 협의·조정하는 과정이다. 형사사법을 넘어 피고인이 변할 기회를 주고 근본적인 변화를 살핀 뒤 결정하는 방식이다. 

“모양새가 정교하지 않은데 어쨌든 법원이 선례를 남기게 됐잖아요. 그럼 사법부가 보완을 하겠죠. ‘회복적 준법감시제도’가 만들어지면(웃음). 이를 바탕으로 검찰과 법원이 연구하겠죠. 이런 측면에서 보면 이 부회장 파기환송심은 귀한 사건입니다. 국정농단으로 상처 입은 사람은 삼성 이해관계자뿐 아니라 일반 국민도 있습니다. 회복의 준법감시제도의 회복 대상은 누굴까요.”

이 지루한 싸움 뒤에는 기업별 준법 프로그램 발전과 이를 평가할 검찰·법원의 연구가 절실하다는 당부도 반복됐다. 조 교수는 “현행법에는 컴플라이언스 관련해 ‘효과적인’도 없고 ‘프로그램’도 없다"며 "상법에선 준법통제 기준, 금융법에선 내부통제 기준을 말한다. 규정조항인 기준과 작동방식인 프로그램은 다르다”고 말했다.

체념 섞인 대답 뒤엔 일말의 희망도 이어졌다. “법만 바꾼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사법부와 검찰이 이번 재판을 계기로 양형 가이드라인을 세워야 합니다. 기업은 그걸 토대로 준법경영을 고민하겠죠. 우리 기업이 10년 주기로 ‘변하겠다’고들 하는데···. (‘삼성을 생각한다’에 손을 올리며) 이번엔 진심으로 잘 됐으면 좋겠네요.

조창훈 교수 약력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컴플라이언스&윤리 전공 주임교수(現)
△카이스트 금융전문대학원 겸직교수(現)
△윤리경영학회 기업윤리교육위원장(現)
△인천국제공항공사 시민참여혁신단 위원(2019)
△한국가스공사 감사자문위원(2017~2019)
△서강대학교 컴플라이언스센터 국장(2017~2018)
△미래에셋증권 컴플라이언스본부 과장(2005~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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