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 “정수기 설치 용역기사도 주휴수당 받아야”

정수기 설치·수리 용역 기사가 포괄임금 계약을 맺었어도 법정수당을 따로 받아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정식 근로계약서 대신 용역 계약을 했어도 근로자성이 인정되면 법정 수당을 모두 받을 수 있다는 취지다.

울산지법 민사12부(김용두 부장판사)는 A 정수기 업체가 퇴직 용역기사 8명에게 통상임금으로 산정한 휴일근로수당과 주휴수당, 연차휴가수당 등 2억여원을 지급하라고 최근 선고했다.

김모씨 등 원고 8명은 2005~2011년 용역위탁계약을 맺고 2014~2018년 퇴사했다. 이들은 A사 정수기 필터 교체와 점검, 수리, 신규·이전 설치 업무를 수행했다.

김씨 등은 회사가 근로기준법상 법정수당을 지급할 이유가 있다며 2018년 소를 제기했다.

반면 회사는 용역위탁계약이 모든 법정수당을 포함한 포괄임금계약이므로 미지급 임금은 없다고 맞섰다. 소정 근로일을 따로 정하지 않아 주휴수당 발생 여부를 논할 수 없다는 주장도 폈다. 김씨 등이 받은 용역비는 업무 실적으로 결정되는 비고정적 수당이므로 통상임금이 아니라는 논리도 보탰다.

재판부는 용역위탁계약에 이미 모든 법정수당이 포함됐다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회사가 김씨 등의 용역비를 약정할 때 야간이나 휴일근로 빈도를 고려하지 않아 이들이 근로기준법상 가산해 받을 수 있던 수당을 전적으로 포기하는 꼴이 돼 불리하다는 판단이다.

주휴수당이 월급에 포함돼 별도 지급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도 배척됐다. 업무 실적에 따른 수당에는 통상적으로 주휴수당이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법원은 회사가 김씨 등의 근로 제공 정도와 성과 등을 고려해 책정한 용역비를 단지 월 단위 주기로 지급한 것에 불과했다고 봤다. 근로일수나 근로시간 길이에 관계 없이 일정하게 지급되는 월급과 성격이 다르다는 설명이다.

재판부는 실제 근무시간을 산정할 수 없어 통상임금을 정할 수 없다는 회사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이 인정한 실제 근무시간은 1일 8시간이다. 재판부는 △정수기 설치·수리 특성상 출퇴근과 근무시간 자체보다 업무 건수가 주된 고려요소인 점 △준비·이동시간 등이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점 △원고들이 별도 토요 수당을 받지 않은 점 등을 고려했다. 이를 근거로 법원은 1주 40시간(주5일)에 1월 평균 주 수인 4.345를 곱해 174시간을 매월 총 근로시간으로 인정했다.

기본급 없는 실적에 따른 수당이 통상임금에 속하지 않는다는 회사 주장도 배척됐다. 재판부는 근로자들이 수령한 수당이 계약 체결이나 근로 제공과 직접 관련 있고 고정급에 가까운 일정률의 금액을 지급받았던 점에 비추어 통상임금에 속한다고 판단했다. 통상임금은 평균임금의 최저한도 보장과 해고예고수당,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 연차유급휴가수당과 출산전후휴가급여 등을 산정하는 기초가 된다.

김씨 등은 이렇게 도출된 통상임금과 근로기준법에 따라 토요일 근무에 따른 휴일근로수당과 주휴수당, 미지금 연차휴가수당 약 2억원을 받게 됐다.

이들이 근로자 지위를 확인한 점도 재판에 영향을 준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원고 중 5명은 2017년 회사를 상대로 청구한 퇴직금 지급 소송에서 이겨 근로자 지위를 확인했다. 사측은 해당 사건의 항소를 취하했다.

원고 승소를 이끈 이충윤 법무법인 해율 파트너 변호사는 “이번 판결은 정수기 설치 수리기사처럼 정식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근로자들도 근로자성만 인정되면 근로기준법상 법정수당을 모두 받을 권리가 있다는 점을 재확인한 판결”이라며 “이번 판결을 계기로 회사가 근로자들의 정당한 권리를 깨닫고 법을 준수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은 이 변호사와 조성제 법률사무소의 조성제 변호사가 2018년부터 맡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