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형의 “실망스럽다”에 고민 깊어지는 이재용

이범종 기자2020-04-09 16:04:35
삼성, '코로나19 비상경영상황'에 준법위 요구 답변기한 연장 요청 김지형, '법경유착' 비판 속 삼고초려에 위원장 맡았는데 연기에 유감 이재용 개입 안하는 준법위, 양형 반영에 필요…모순 없는 정리 고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김지형 삼성 준법감시위원장, 정준영 서울고법 부장판사. [사진=이범종 기자, 아주경제DB]

[데일리동방] 김지형 삼성 준법감시위원장이 8일 사측을 향해 던진 “실망스럽다”는 발언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아쉬움이 엿보인다. 삼고초려 당시와 현재 상황에 온도차가 보이기 때문이다.

삼성 측은 최근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확산에 따른 비상경영체제가 지속돼 권고안 논의에 차질이 생겨 답변 기한을 더 달라고 준법위에 요청했다. 준법위는 상황이 부득이하다고 판단해 기한 연장 요청(5월 11일)을 받아들였다.

이에 김 위원장은 “위원회가 원래 정해준 기한을 삼성 측에서 지키지 못한 것은 실망스러운 일”이라며 유감을 드러냈다. 삼성 측이 하루 빨리 최선의 방안을 도출하라고 재촉하기도 했다.

앞서 준법위는 지난달 11일 이 부회장과 삼성전자 등 7개 계열사에 권고문을 보내고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저지른 준법의무 위반행위에 대한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 △노동법규 위반 사례에 대한 반성과 무노조 경영 방침 철회 선언 △시민사회 신뢰회복을 위한 실행 방안 공표 등을 요구했다.

특히 마지막 권고에는 총수 재판과 준법위 활동 관련성 의혹을 이 부회장 본인이 직접 나서 불식하라는 내용이 담겼다.
 

김지형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가 1월 9일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삼성 준법감시위원장 수락 배경을 밝히고 있다. [사진=이범종 기자]

◆준법위 출범 배경은 위기의식

표면적으로 김 위원장의 표현은 회신 기한을 한 달이나 줬음에도 아무 답변도 못 들은 데 따른 반응으로 보인다. 하지만 시간을 거슬러 가면 이 실망에 그보다 훨씬 깊은 인내와 고민이 녹아 있다고 볼 수 있다.

김 위원장이 언론에 준법위원장 수락 기자회견을 연 날은 지난 1월 9일이다. 법원이 지난해 10월 25일 이 부회장 뇌물죄 파기환송심 첫 재판에서 이 부회장에게 재벌체제 혁신을 당부하며 미국식 준법감시제도를 언급한 지 약 두 달 만이었다.

기자회견 당시 김 위원장은 “총수 형사재판에서 유리한 양형 사유로 쓰이는 면피용 위원회가 될 수 있는 점 등을 의식해 위원장직을 몇 차례 거절했다가 자율성과 독립성에 대한 이 부회장의 확약을 직접 받고 수락했다”고 말했다.

당시 이 부회장 뇌물죄 파기환송심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1부 정준영 부장판사가 기업혁신을 주문한 뒤 “재판 진행이나 결과와는 무관함을 분명히 해둔다”고 말했음에도 삼성이 준법감시위원회를 세우자 법원의 형량 줄이기용 가이드라인이 작동하고 있다는 비판이 일었다.

같은달 17일 법원은 준법감시위원회 활동을 평가해 양형에 반영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법경유착’ 비판이 뒤따랐다.

이후 준법위가 2차 회의 날짜를 다음 재판 전날인 2월 13일로 잡으면서 의도가 석연치 않다는 관측을 낳았다. 일종의 장외 변론 아니냐는 의혹이다.

그 사이 재판부는 공판을 미루고 이 부회장과 특검 측에 준법위 평가 내용을 양형에 반영하는 데 대한 의견서를 내라고 했다.

하지만 재판은 특검이 2월 24일 법원에 재판장 기피 신청서를 내면서 무기한 연기됐다. 현재 서울고법 형사3부가 법관 기피사건을 심리중이다.

재판이 롤러코스터를 타는 동안 준법위는 첫 성과를 냈다. 삼성전자 등 계열사 17곳은 2월 28일 2013년 옛 미래전략실이 시민단체 10곳을 ‘불온단체’로 규정하고 후원 내역을 동의 없이 열람한 점에 대해 “잘못이었음을 인정한다”며 사과했다. 이날은 법원이 이 부회장과 특검에 요구한 의견서 제출 마감일이었다.

준법위는 여세를 몰아 지난달 11일 감시 대상인 삼성 7개 계열사에 권고안을 내고 이달 10일까지 답변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삼성이 답변을 미뤄 김 위원장이 실망을 표한 권고안이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3월 13일 서울 대한변호사협회 앞에서 삼성 준법감시위원장인 김지형 전 대법관과 준법감시위원 봉욱 정 검사 징계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제공]

◆비난 감수하며 기다린 답변은 “시간 더 달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지난달 13일 대한변호사협회에 김 위원장과 준법위원인 봉욱 변호사를 징계하라며 진정서를 냈다. 각각 대법관과 대검 차장검사를 지낸 두 사람이 준법위 활동으로 실질적인 변호사 업무를 수행한다는 주장이다.

두 사람은 서울지방변호사회 소속이어서 해당 진정 요청은 서울변회로 이첩된 상태다. 서울변회 판단에는 수개월이 걸릴 전망이다. 진정 내용이 예비조사위원에게 배당되면 몇달 간 조사가 진행된다. 이후 조사 결과는 윤리이사 등 소관이사들이 검토한다. 그 다음 상임이사회가 사안을 조사위원회에 보낼지 기각할 지 검토한다. 사안이 조사위원회에 간다 해도 몇 달이 걸린다. 언제 끝날 지 모르는 조사와 검토가 직업인으로서의 김지형을 압박하고 있다. 삼성 계열사들이 준법위원에게 주는 한달 활동비는 50만원이다.

김 위원장이 고난을 감내하며 기다리던 삼성의 답변은 들려오지 않았다. 삼성은 코로나19 사태를 이유로 댔지만 총수 재판 카드를 만들기 위해 분주했던 태도가 온데간데 없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앞서 이 부회장 측은 30쪽 분량 의견서를 2월 27일 법원에 냈다. 삼성 준법감시위원회가 양형 판단 요건이 돼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부회장의 신호는 명확했다. ‘나에겐 삼성 준법감시위원회가 필요하다.’

이 때문에 삼성에 주어진 시간 중 상당부분은 ‘피고인 이재용’ 재판과 준법위 관련성을 모순 없이 정리할 방법을 고민하는 데 쓰일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 측은 제도로서의 준법위가 양형 판단에 필요하지만 활동 내용에는 관심도 없고 개입도 않는다는 입장이다.

다만 삼성은 정 부장판사가 미국식 준법감시제도를 언급한 뒤 “실제 재판이나 결과와는 관련 없다”고 덧붙였음에도 준법위를 출범시켰다.

김지형 변호사는 삼성의 삼고초려 끝에 위원장직에 앉았다. 그런 그가 참다 못해 내뱉은 “실망스럽다”는 발언은 이 부회장의 고민에 무게를 더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