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문화산업’이지만 예술은 아닌…편견과 싸우는 게임산업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이범종 기자
2020-04-29 12:55:54

시ㆍ소설・영화 접목 종합예술…지위적립 필요

美・日 등 예술 인정…韓, 국회 문턱 못 넘어

WHO, 질병코드 등재 후 코로나19에 권고

확률 과금 치중 숙제…게이머 피로감 해소해야

2016년 공개된 ‘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 트레일러. 상대를 제압하는 게임 예고편이 아닌, 대작 영화 시리즈의 예고 방식을 따랐다.[사진=플레이스테이션 유튜브 갈무리]

시적인 대사와 여운에 남는 노래. 현실적이지만 실제 아닌 체험. 주인공을 내 손으로 움직이는 순간 영화는 ‘게임’이 된다.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실내 여가활동이 늘면서 게임이 주목받고 있다. 코로나19는 게임이 종합예술산업으로 인정받는 계기가 될 수 있을까. 상황은 낙관적이지 않다.

플레이스테이션을 구입하면 반드시 해야 하는 게임으로 꼽히는 너티독의 ‘라스트 오브 어스’ 후속작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 발매가 무기한 연기됐다. 코로나19 때문이다. 악재는 지난 26일 줄거리와 결말 유출로 겹쳤다. 사람들은 이번 유출이 작품 흥행에 미칠 영향을 우려했다. 게임을 ‘작품’으로 만드는 요소가 줄거리이기 때문이다. 1편은 발매 5년만인 2018년 6월 1700만장 판매 기록을 세웠다.

원작은 좀비 바이러스로 황폐해진 세상에서 딸을 잃은 아버지가 한 소녀를 지키려는 고군분투를 보여준다. 현실적인 그래픽과 유용한 사용자 환경 등이 게임성을 높이지만 주요 장면을 이어붙이면 한 편의 영화가 된다. 게이머는 ‘이 아이만큼은 반드시 구해야 한다’는 주인공의 심정에 몰입하며 난관을 헤쳐간다. 게임을 문화예술로 만드는 서사의 힘이다.

◆게임의 바탕은 문학적 상상력

게임은 문학과 영화의 가교 역할을 해왔다. J. R. R. 톨킨의 ‘반지의 제왕’은 1990년 미국 인터플레이가 역할수행게임(Role-Playing Game : RPG)으로 만들어 내놨다. 국내에는 ‘반지의 지배자’라는 이름으로 유통됐다. 머릿속으로 상상하던 중간계 모습을 움직이는 컴퓨터 그래픽으로 구현하려는 시도였다.

게임 줄거리가 영화에 반영되기도 한다. 오늘날 블리자드를 만들어준 대표작 ‘워크래프트’는 2016년 영화로 만들어졌다. 영국 에이도스가 만든 어드벤처게임 시리즈 ‘툼 레이더’ 역시 영화로 세 차례 만들어졌다. 스타워즈급 대서사시로 평가받는 블리자드 ‘스타크래프트’도 영화 제작에 대한 소문이 반복돼 왔다.

국내 업체도 이야기의 힘을 키우고 있다. 국내 업체 컴투스는 2018년부터 ‘컴투스 글로벌 게임문학상’을 개최하고 IP(지적재산권) 토대를 닦고 있다. 지난해 게임 시나리오 부문 최우수상을 받은 최지혜씨의 ‘드래곤 퀸 메이커’는 실제 게임으로 제작된다. 대표 IP ‘서머너즈 워’는 소설과 만화, 애니메이션 등으로 확장되고 있다.

그간 PC와 콘솔용으로 제작된 게임들은 기술적 한계 속에서 영화를 연상케 하는 도입부와 엔딩을 추구해왔다. 그래픽카드 성능이 비약적으로 증가한 2000년대 이후 게임과 영화의 경계는 점차 흐려졌다. 이런 흐름은 장르 특성상 RPG에 뚜렷이 반영됐다.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 국내 RPG의 경우 손노리의 ‘악튜러스’, 와이즈 하이콤의 ‘코룸’ 시리즈 등이 대표적 사례다.

같은 시기 실시간 전략시뮬레이션(RTS) 게임에도 영화적 요소가 반영됐다. 앙상블 스튜디오의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는 종영 자막(엔딩 크레딧)을 띄울 때 전투 유닛들을 연기자로 표현했다. 스타크래프트는 임무 요약 보고 장면마다 등장 인물들의 갈등 구도를 부각했다. 성우들의 연기와 움직이는 초상화가 몰입감을 높였다.

이후 기술 발전이 거듭되면서 등장인물 간 대화와 게임 진행 상황을 하나로 묶는 방식은 대작의 조건이 됐다. 현재 유튜브에서 ‘라이즈 오브 툼레이더’ ‘라스트 오브 어스’ ‘스타크래프트 2’ 등을 검색하면 게임 주요 장면을 그대로 이어붙인 영상물이 줄줄이 검색된다. 한편의 3D 애니메이션 영화와 같다.

미술적 측면에 강점을 부각하는 전략도 있다. 게임빌 RPG ‘별이 되어라’는 지난해 6월 시즌 7에 접어들며 김정기 작가의 라이브 드로잉 작업을 발표해 주목 받았다. 용족과 인간족의 대립과 전쟁을 멈출 실마리를 찾아가는 우주 모험을 담은 영상은 조회수 27만회를 넘겼다. 같은 장르 ‘엑소스 히어로즈’는 손민석 아트 디렉터의 파스텔톤 원화로 요정과 마족 등을 섬세하게 표현했다는 평가다.
 

영화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 [사진= 다음 영화]

 
◆기준 없이 때리다 필요할 땐 권고

게임의 문화예술적 가치가 꾸준히 입증되고 있지만 여전히 ‘동네 북’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지난달 WHO(세계보건기구)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한 ‘플레이 어파트 투게더(#PlayApartTogether·떨어져 함께 놀기)’ 캠페인을 시작했다. 지난해 5월 ‘게임 사용 장애(Gaming Disorder)’를 국제표준질병분류 11판(ICD-11)에 등재한 지 1년이 채 안 된 상황이었다. 캠페인은 액티비전 블리자드와 라이엇게임즈 등 주요 업체를 중심으로 참여중이다.

이를 지켜본 게이머 반응은 싸늘했다. 질병코드 등재 당시에도 장애 기준이 애매해 비판 받던 WHO가 게임의 순기능이 절실해진 상황에서 게임 이용을 권장해서다.

WHO의 게임 사용 장애 기준을 보면 게임을 우선하는 모습이 12개월간 뚜렷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게임 사용 장애로 볼 수 있다. 디지털・비디오게임에 한정된 범위도 오프라인게임과의 형평성, 학습 목적게임과의 관계 설정 등 불분명한 부분이 많아 비판받아왔다.

학계는 씁쓸한 미소로 화답했다. 한국게임학회장인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는 지난 2일 “게임의 응축된 사회활동은 ‘물리적 사회 응축’을 해결하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라며 “물리적 공간에서 거리를 두되 ‘대결, 화합, 소통, 갈등, 해결’과 같은 사회적 교류를 사이버 공간에서 가능하게 하는 게임의 순기능을 보다 적극적으로 도입하면 사회적 거리두기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WHO가 부정적으로 본 ‘게임의 공간적 응축성’이 역설적으로 코로나19와의 대결에서 승리하기 위한 결정적 수단이라는 지적이다.
 

김정기 작가의 ‘별이 되어라!’ 라이브 드로잉. 게임 세계관을 압축해 표현했다. [사진=게임빌 유튜브 갈무리]

 
◆범위 넓어 애매한 정체성

현행법도 게임의 복잡한 정체성을 반영한다.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게임진흥법)은 게임물을 오락할 수 있는 컴퓨터 프로그램 등 기계장치로 정의한다. 여가와 학습, 운동효과 등을 높이도록 제작된 영상물, 이를 주로 이용하도록 만들어진 장치도 게임물에 포함된다. 같은 법은 정부가 게임 관련 창업자와 전문인력 지원도 할 수 있다고 명시한다. 게임의 정의에 속한 여가와 학습, 운동효과를 일으키려면 사용자 환경이 뒷받침돼야 한다. 사용자가 즐겨야 하는 게임 특성상 문화예술적 요소가 무관치 않게 된다.

산업으로서의 게임은 또 다른 법으로 강조된다. 문화산업진흥 기본법도 게임 관련 산업을 문화산업으로 정의한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설립과 게임 연구 근거도 이 법에 있다.

반면 문화예술은 ‘문화예술진흥법‘에 따로 적시돼 게임과 다른 영역으로 보호받고 있다. ‘귀에 걸면 귀걸이 식’ 무차별 규제가 게임만 향할 가능성이 높은 배경이다. 2013년에는 게임을 도박・마약・알콜 같은 중독물질로 규정하는 법안이 발의된 사례도 있다.

게임을 보는 관점은 과도기를 밟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간한 ‘2019 대한민국 게임백서’를 보면 게임은 여전히 공부를 방해하는 매체로 인식되고 있다. 학부모 589명 가운데 50.9%는 게임이 자녀 학업에 방해 된다고 답했다. 특히 여성(54.1%)과 40~50대(각각 52.4%, 51.1%)가 이같이 반응했다.

자녀와 함께 게임을 한다는 응답은 30대를 중심으로 높았다. 같은 나이대가 19.1%, 40대는 5.7%로 뒤를 이었다. 가끔 한다는 대답은 40대가 46.2%, 30대가 38.4%, 50대가 30.7% 순으로 많았다. 20대는 100%였지만 설문 대상이 2명 뿐이었다. 2030을 중심으로 자녀와 게임하는 시간을 늘리면서 부모 세대의 편견은 점차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컴투스 글로벌 게임 문학상’ 게임 시나리오 부문 최우수상을 받은 최지혜 씨의 ‘드래곤 퀸 메이커 삽화. [사진=컴투스]

 
◆점차 넓어진 ‘예술’ 범위…양산형 과금이 발목 잡나

하지만 국내에서 게임이 ‘문화산업’을 넘어 ‘문화예술’로 분류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게임을 문화예술 정의에 포함시켜 지원하는 법안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병관 의원이 2017년 1월 대표 발의한 ‘문화예술진흥법 일부개정법률안’은 현재 국회에 계류중이다. 20대 국회가 끝나면 개정안은 자동 폐기된다. 현행법이 제정된 1972년 당시 문화예술 범위는 문학·미술·음악·연예·출판에 불과했다. 이후 1987년 무용·연극·영화가 포함됐다. 1995년에는 응용미술과 국악·사진·건축·어문이 추가됐다. 만화는 2013년에 포함됐다.

미국에선 2011년 연방대법원 판결로 게임이 소설과 영화, 연극 같은 예술 장르로 인정됐다. 우리나라 문화체육관광부 격인 미국 NEA(국립예술기금)도 게임을 예술로 보고 지원중이다. 일본도 ‘문화예술진흥기본법’으로 게임을 문화예술로 명시해 게임 진흥을 국가 책무로 규정했다.

하지만 지난해 7월 문화체육관광소위는 ▲현행 게임산업진흥법과 중복 적용에 따른 기존 문화예술 종사자의 형평성 문제 ▲e스포츠 등 게임의 포괄적인 정체성 ▲게임 제작자와 프로그래머의 예술인 대우 문제 등을 들어 개정안 계류를 결정했다.

게임에 대한 편견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로는 확률형 과금에 치중된 양산형 게임 범람이 지목된다. MMORPG(다중접속 역할수행 게임)에서 무기 하나를 얻기 위해 쏟는 돈이 수억원에 달한다는 이야기가 빈번히 나돈다.

코로나19 사태로 국내 게임업체의 수혜가 예상됐지만 닌텐도 ‘동물의 숲’ 열풍이 불고 있다. 위정현 교수는 페이스북에서 “국내 게이머들에게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피로감이 있기 때문에 동물의 숲이 급격하게 확산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양산형 게임의 토대는 지갑을 여는 게이머인만큼 작품성 있는 게임 중심으로 시장을 재편할 힘 역시 소비자에게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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