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펀드 미술품 감정에 효성 조현준 개입 없었다” vs "국내외 불경기 감안했나"

이범종 기자2020-05-14 05:00:00
“스테디셀러는 경기 나빠도 가격 안 내려가” ‘1의 단위까지 똑같이 책정’ 주장에는 “명예훼손…대질신문 하겠다” 효성 측이 평가 가격 알려줬나 묻자 “그럴 거면 안 하는 게 낫다”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이 13일 자신의 재판을 마치고 서울고등법원을 나서고 있다. [사진=이범종 기자]

[데일리동방]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이 혐의 중 하나인 회사의 미술품 고가 매입이 사실과 다르다며 미술 전문가를 증인으로 내세웠다. 증인은 조 회장 개입 없이 작품을 감정했다고 증언한 반면, 검찰은 국내외 불경기 반영 여부와 사진에 의존한 작품 평가에 의문을 제기했다.

서울고법 형사6부(부장판사 오석준)는 13일 조 회장의 200억원대 횡령·배임 사건 항소심 공판을 진행했다. 이날 재판에서는 조 회장이 2008∼2009년 개인 구매한 미술품 38점을 효성 ‘아트펀드’에서 실제 평가액보다 비싸게 구입하게 해 차익 12억원을 챙긴 혐의(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관련 증인신문이 진행됐다. 효성 아트펀드는 대주주 미술품 매입이 금지돼 있다. 이날 증인으로는 조 회장 측이 신청한 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이 나왔다.

이날 조 회장 측은 증인신문을 통해 효성 아트펀드가 사들인 미술품 가격 결정에 조 회장이 개입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9월 1심은 해당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다. 그가 회사 업무 수행을 빙자해 자신이 소유한 미술품을 규정을 위반하면서 실제 가치보다 비싸게 처분해 이익을 취득했다고 봤다. 반면 조 회장 측은 아트펀드 자산운용사인 한국투자신탁운용(한투)이 선임한 자문위원 세 명이 평가해 결정됐다고 주장한다.

이날 증인으로 나온 정 전 실장은 중앙대 미대를 졸업한 뒤 국내 주요 행사와 관련 기관을 이끌며 30년 넘는 경력을 쌓았다. 미술품 매입과 가격 평가 업무도 해온 전문가다.

효성 개입 없이 적정가 제시

정 전 실장은 미술품 가격 산정 과정에서 조 회장 측 개입은 없었다고 증언했다. 그는 ‘평가 가격을 효성이 알려줬느냐’는 변호인 질문에 “그걸 알려주면 감정 안 하는 게 낫다”고 잘라 말했다. ‘평가 의뢰를 누가 했는지 알려줬느냐’는 물음에도 “아니다. 소장가를 알려주지 않고 한다”고 답했다. 정 전 실장은 한투 직원이 보낸 평가 요청 이메일에 답장 하는 형식으로 작품을 2~3차례 감정했다고 증언했다. 작가 기준으로 열댓명 정도의 작품을 살폈다고 한다.

이날 정 전 실장은 미국 개념 미술가 존 발데사리와 독일 신표현주의 화가 게오르그 바젤리츠 등 해외 유명 작가 작품을 각각 1억5000~1억8000만원대와 6억원대로 책정했다고 밝혔다. 뉴욕에서 활동하는 런던 출신 작가 세실리 브라운 작품은 13억~14억원을 감정가로 제시했다. 아트펀드는 이들 작품을 정 전 실장의 책정가와 비슷한 가격에 매입했다.

문제 된 이들 작품 중 바젤리츠 그림의 경우 “자화상을 그린 것이라 경력에서 상당히 모멘텀이 되는 작품”이라며 “다른 작품은 컬러풀한데 이것은 흑백이라 의미 있다”고 설명했다. 미술품 가격을 고가로 매긴 이유에 대해서도 “신표현주의 다섯손가락 안에 드는 작가”라며 “미술 시장에서 상당히 높게 평가됐고 국립현대미술관 전시 때 보험료도 있어 (가격 상승에) 큰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아트펀드는 2008년 11월 작품을 34만5800달러에 매입했다. 정 전 실장이 책정한 가격과 비슷한 수준이다.

증언은 이 지점에서 검찰 측 주장과 상반됐다. 검찰은 자문위원 세 명 중 한 명의 낮은 감정가를 근거로 아트펀드 매입가가 부당하게 높다고 주장해왔다. 반면 정 전 실장은 ‘다른 위원이 6만~7만 달러를 제시했다’는 변호인 측 물음에 “그 정도에 살 수 있다면 복권 사는 것보다 훨씬 이익”이라고 말했다. 다른 자문위원이 세실리 브라운 작품 가격을 자신보다 절반 낮게 책정한 데 대해서도 “세실리 브라운이 당시 한국에선 별로 유명하지 않아서 저렇게 쓴 것 아닌가 싶다”며 “저로서는 동의할 수 없는 가격”이라고 답했다.

미술품 감정 당시 국내외 경제 상황이 작품 가격 평가에 온전히 반영됐는지에 대한 질의도 오갔다. 검찰 측은 ‘미국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와 신정아 씨 학력 위조, 삼성 에버랜드 창고에서 발견된 여러 고가 미술품, 박수근 작품 빨래터 위작 논란 등으로 미술품에 대한 국내 심리가 크게 위축될 우려가 있는 상황이었다는 일부 의견이 있었는데 이 부분을 고려했느냐’고 물었다. 이에 정 전 실장은 “그건 국내 상황이고 (감정한 작품은) 해외 작품”이라고 답했다. 검사가 ‘국내에서 팔아야 할 텐데’라고 재차 묻자 “해외에 팔면 된다”고 반박했다. 스테디 셀러의 경우 미술사에 남기에 당장 경기가 나빠도 가격이 내려가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그는 변호인 신문 때 외환위기 당시 김환기·박수근 등의 작품을 시장에 내놓으면 오히려 가격이 더 올라갔다고 증언했다.

정 전 실장은 작품 가치 산정에 고려할 요소 가운데 소장 이력도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다만 감정 대상 38점이 조 회장 개인 소장품인 점은 몰랐다고 진술했다. 한투에서 당시 소장가를 알려주지 않은 대신 ‘이 그림을 살 경우 선생님이라면 얼마를 주시겠느냐’는 식으로 가격 평가를 요청했다는 설명이다.

檢 "진품 없이 사진만 봐도 아나" 정 "못봤던 그림 보는 것이 감정 목적"

검찰은 그가 진품 대신 한투 측이 보내온 사진으로 감정한 데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이에 정 전 실장은 “감정할 때 못 봤던 그림을 보는 것이 저의 최고 목적”이라며 “한투에서 감정을 부탁하며 자기들이 주로 외국 작품을 펀드에 편입시킨다 했을 때 세계적 작품이 한국에 들어오는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라 생각해 한 것”이라고 진술했다. 오랜 경력을 쌓은 전문가는 유명 작가의 작품을 사진으로 봐도 특징이 단번에 보이기에 평가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증언에서는 자문을 의뢰한 한투 측의 업무 미숙을 지적하는 내용도 나왔다. 그는 담당 직원이 중국 사진작가 왕칭송 작품의 ‘에디션 넘버(작품 수량)’를 알려주지 않아 평가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사진이 단 한 장이면 값이 오르는 반면, 미국과 유럽 기준 11~13장을 넘길 경우 작품이 아닌 공예품으로 취급한다는 설명이다. 정 전 실장은 검찰 측 증인신문에서 “한투 직원에게 에디션 넘버를 물었지만 모른다고 했다”고 말했다.

‘한투에서 사진자료 이외에 다른 자료를 안 보냈느냐’는 좌배석 판사 질문에는 “사진만 달랑 왔다”며 “용량이 작아서 큰 것을 보내달라고 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정 전 실장은 자신의 미술품 감정 과정에 대한 잘못된 증언을 바로잡기 위해 이날 법정에 들어섰다고도 밝혔다. 그는 재판장이 ‘본인 생각에 한투 의뢰의 경우 일에 비해 많이 받았나 적게 받았느냐’고 묻자 “제가 여기 나온 것도 특별히 가격이 맞춰졌다는 주장에 화가 나서 나왔는데, 여기 나온 것까지 합치면 적게 받은 것”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그는 이날 변호인 신문 때 한투 직원이 자신과 다른 감정위원이 1달러단위까지 똑같이 맞춰 평가했다고 증언한 데 대해 “100만이면 100만1000까지 하지 저렇게 단 단위로 하는 경우가 없다”며 “귀신이 아닌 다음에야 못한다”고 답했다.

정 전 실장은 같은 취지의 질문이 이어지자 헛웃음을 지으며 “제가 자부심과 명예를 중시하며 살았는데 저렇게 이야기하는 이유를 모르겠고, 대질신문을 하고 싶다”며 “(왕칭송 사진 작품) 에디션 넘버 없으면 할 수 없다고 말했더니 ‘빡빡하게 평가한다’고 했다”고 증언했다. 이어 “저로서는 상당히 불쾌하고 법정서 얘기했다 해서 가능한지 모르겠지만 저에 대한 명예훼손이라고 생각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재판부는 이날 함께 증인신문 하기로 했던 다른 증인을 6월 17일 공판에 다시 부른다. 조 회장의 효성인포메이션시스템(HIS) 허위 급여 지급 의혹 관련 증인신문도 진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