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동방人] ‘뉴노멀 공연이 온다’ 윤승혜 무용단의 VR 적응기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이범종 기자
2020-06-04 11:11:00

임시방편 지위 벗어날 VR 공연 도전…360도 카메라 맞춰 안무 뜯어고쳐

27년만에 AI융합학과 신입생으로…4차산업혁명 발 맞춘 무용의 미래 그려

윤승혜 무용단 대표가 지난달 25일 강남 밀물아트센터에서 VR 프로젝트 ‘I/Sprout’ 공연을 하는 모습. [사진=윤승혜 무용단 제공]

무용수 일곱명의 군무에도 객석의 시선이 움직이지 않는다. 탄성도 박수도 없는 정적. 아랑곳 하지 않는 윤승혜 무용단이 같은 공연을 반복한다. 아무도 원치 않은 앙코르 공연에도 문 열고 나간 사람이 없다. 관객이 없어서다.

지난달 25일 오후 8시 강남 밀물아트센터에서 열린 가상현실(VR) 공연 프로젝트 ‘I/Sprout(나/자라다)’는 이렇게 촬영됐다. 수십년 무대생활에 익숙한 무용단 대표가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19(코로나19)로 ‘뉴 노멀(새 기준)’에 눈 뜬 이야기를 듣기 위해 2일 압구정동을 찾았다. 올해 인공지능(AI) 공부를 시작한 윤 대표는 “예상치 못한 난관이 많았지만 이번 경험으로 VR에 맞는 안무가 무엇인지 알게 됐다”며 “앞으로 소리를 형상화한 증강현실(AR) 공연도 준비하고 싶다”고 말했다.

◆포스트 코로나 고민케 한 ‘VR 안무’

몸으로 선율을 그리는 무용은 관객의 오감으로 완성된다. 옷과 살에 비치는 조명과 떨림, 들숨과 날숨을 주고받는 교감이 무대와 객석의 거리를 좁힌다. 기존 카메라 촬영은 단순 기록용으로 치부돼 온 이유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 코로나19 사태는 임기응변이 아닌 뉴 노멀을 요구한다. VR과 AR도 주요 공연 방식 중 하나로 자리할 계기가 됐다. 윤승혜 대표가 그간 미루던 VR 촬영을 진행한 이유다.

“무용은 현장성이 중요해요. 살과 정서, 호흡의 느낌이 실시간 발산되는 점이 매력이죠. 손 하나를 드는 데 녹아든 정서는 보는 사람마다 달라요. 객석에서 보는 조명과 카메라 렌즈를 거친 조명의 느낌도 차이가 큽니다. 하지만 VR 공연은 바로 앞에서 춤 추는 것 같아 재밌더라고요.”

코로나19 사태가 길어지면서 공연계는 개점휴업을 이어가고 있다. 스태프와 무용수들은 발이 묶였다. 확진자 감소세로 잠시 숨이 트이던 5월 넷째주가 기회였다. 전문무용수지원센터 지원금으로 26일 ‘그로우 업(Grow Up)’ 공연을 하게 되자 윤 대표는 같은 무대에서 사비로 VR 촬영을 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3월 중순부터 준비했지만 예상 못한 시행착오가 연달아 일어났다. “VR 공연만을 위한 안무를 한달 간 따로 짜면서도 카메라엔 어떻게 비춰질 지 몰라 막막했죠. 공연 3주 전 시험촬영을 하고는 작품을 뒤엎어야 했어요.”

새로 짜야 했던 공연 분량은 윤 대표 솔로와 듀엣 각 18분, 일곱명 군무가 8분으로 44분에 달한다. 조명도 문제였다. 카메라를 마주하는 역광에 무용수가 가려지는 일이 빈번했다. 360도 관람에 맞는 조명 밝기와 각도를 찾아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진행한 공연은 연달아 두 번 열렸다. 처음엔 카메라가 무대 앞을, 다음엔 무대 중앙을 찍어야 영상이 완성돼서다. 다행히 불평이 아닌 예술인 특유의 모험심이 열기를 더했다. “무용하는 사람의 장점은 열린 마음이예요. 다들 신기해하고 재밌어했죠. 저만 죽어났어요(웃음). 춤 추랴 안무 구조 바꾸랴 조명 바꾸랴 공연 하랴···.”

무엇보다 VR을 위한 안무를 새로 고민한 점이 큰 소득이다.

“기존 연습용 영상을 찾아 보니 카메라가 고정된 상태에서 기존 방식대로 춤을 추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무용수가 화면 밖으로 나가거나 앞모습 아닌 뒷모습이 강조됐죠. 그래서 우리는 촬영 범위를 기준으로 작품을 짰습니다. 실제 해 보니 즉흥성과 변수가 너무 많더라고요. 앞으로는 이런 점을 잘 계산해 준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지난달 25일 강남 밀물아트센터에서 열린 VR 프로젝트 ‘I/Sprout’ 공연. [사진=윤승혜 무용단]

◆계속되는 도전 ‘소리의 파장 어떻게 보여줄까’

윤 대표가 VR을 임시방편이 아닌 뉴 노멀로 받아들인 배경은 기술과 예술의 접점에 대한 고민이다. 이화여대 무용학과(한국무용) 93학번인 그는 용인대 무용학 석사와 경기대 공연예술학 박사(수료)로 청춘의 방황과 미래 고민을 상쇄해왔다. 중견 예술가로 입지를 다진 뒤에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보이지 않는 금광으로 손 뻗고 싶어졌다.

“20대에는 작품에 한계를 느껴 석사, 30대엔 여전히 부족한 나를 채우기 위해 박사 과정을 밟았어요. 40대 들어 또 한 번 고비가 오니 새로운 곳에서 ‘다름’을 추구하고 싶었어요.”

그때 눈에 들어온 ‘새로운 곳’이 글로벌사이버대학교 AI융합학과였다. 올해 27년만에 학부 새내기가 된 윤 대표는 새 시대 새 무대를 상상한다.

“VR과 AR로 소리의 떨림을 보여주고 싶어요. 소리의 파장을 넘어 인생의 파장을 보여주려면 기술과 안무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합니다. 마음과 소리, 물질의 떨림이 제각각인데 소리를 못 듣는 사람은 진동으로 이를 감지하지요. 필요한 가상 공간은 3차원 바깥을 생각할 수 있어요. 물에 들어가지 않아도 그 속에서 추는 듯한 춤을 상상해 보세요.”

윤 대표는 AI가 기계학습의 일종인 딥러닝으로 안무를 학습해 무용수의 윤곽에 최적의 파장을 뻗는 방법을 상상한다. 이번 VR 안무 경험을 보태면 전통적 안무 규칙에 혁명이 일어날 수 있다는 기대도 있다. 그가 말한 소리의 떨림은 완숙한 초심자의 전율이기도 하다.

“단원들이 제시간에 만나 연습하기 힘든 현실에서 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안무법이 나올 수도 있어요. 센세이션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욕심 나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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