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정규직 전환, '을(乙)들의 전쟁'으로 번지나

주진 선임기자2020-06-29 16:24:04
공공기관 정규직 전환, 추진 40.2% vs 보류 45%…청년층 상대적 박탈감ㆍ불안감 높아져 공공기관 3년간 9만명 정규직 전환…자회사 통한 정규직 전환 '꼼수' 눈길

[사진=청와대]


[데일리동방] 인천국제공항공사의 정규직 전환 논란이 뜨겁다. 청와대와 정부의 해명에도 청년과 비정규직 간, 정규직과 비정규직간의 ‘을(乙) 대 을(乙)’ ‘노노(勞勞)’ 갈등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29일 현재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공기업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중단을 요구하는 글에 동의하는 사람이 25만명을 넘어섰고, 취업준비생 커뮤니티를 비롯한 온라인 상에서는 ‘부러진 펜’ 해시태그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공공기관에 정규직으로 채용되기보다 비정규직으로 들어가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게 더 쉽다며 ‘역차별’이라는 것이다.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보류해야 한다는 의견이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을 앞섰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나왔다.

29일 리얼미터에 따르면 지난 26일 실시한 조사(전국 성인남녀 500명 대상,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4.4%포인트)에서 공공기관 정규직 전환과 관련해 전체 응답자의 45.0%는 역차별 우려 등 부작용을 고려해 보류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장기적 고용 체계 변화를 위해 정규직 전환을 계속 추진해야 한다는 응답은 40.2%였다. 14.8%는 잘 모른다고 응답했다.

특히 연령대별로 보면 취업준비생(이하 취준생)이 많은 20대에서 정규직 전환을 보류해야 한다는 응답이 55.9%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고 리얼미터는 설명했다.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20대 지지층 이탈 시작…왜 등 돌렸나

황덕순 청와대 일자리수석은 지난 24일 한 매체를 통해 인국공 사태를 둘러싼 논란은 '오해'로 인해 벌어진 일이며 청년들의 일자리를 뺏는 게 아니라 일자리를 늘리기 위한 노력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황 수석은 "얼마 전 발표된 1900여명 정규직화 결정은 이미 2017년 12월 정해져 있던 것"이라며 "이분들 일자리가 기존 청년들 일자리를 뺏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자리를 늘리기 위한 노력으로 진행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취준생들은 오히려 이러한 정부의 해명이 군색하다며 신규 채용에 영향을 주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고 불안해하고 있다. 사회적 약자인 비정규직의 직접 고용에는 공감하지만, 공정한 경쟁 구도를 해칠 수 있다는 불안감과 불만이 팽배해있다.

하태경 미래통합당 의원은 인천국제공항 보안검색요원들의 정규직 전환을 ‘불공정한 로또 취업’이라며 ‘로또취업방지법’을 발의할 예정이다. 공기업과 공공기관의 공개 경쟁 채용을 의무화해 비정규직 역시 다른 구직자와 동등하게 경쟁하도록 하는 게 골자다.

 

[사진=인터넷]

하지만 이번 논란의 근본적인 원인은 노동의 이중구조와 높은 청년 실업률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다.

28일 통계청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청년(15~29세) 실업률은 10.3%로 전체 실업률(4.5%)의 2배를 뛰어넘는다.

또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 청년층 부가조사를 보면 지난해 청년의 졸업 후 첫 직장이 정규직인 경우는 56.7%에 그쳤고, 1년 이하 단기계약직에서 일을 시작한 청년은 24.7%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청년 중 4명 중 1명은 단기계약직으로 첫 출발을 하는 셈이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의 임시직 직원이 1년후 안정적인 정규직이 될 확률은 11.1%로, OECD 국가 평균인 35.7%에 크게 못 미친다.

특히 청년층이 안정된 직장으로 대기업과 공공기관(공기업)을 선호한다는 점에서 인천국제공항의 정규직 전환 문제에 그만큼 민감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정규직 전환 목표 근접에도 질적 성장 우려…‘노노勞勞 갈등’도 고개

문재인 정부는 2017년부터 2020년 말까지 3년간 공공부문 비정규직 20만 5000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목표를 잡았다. 

​28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기준 19만 3000명에 대한 정규직 전환이 결정돼 목표치의 94.2%를 달성했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 시스템인 알리오에 따르면 현정부 출범 이후인 2017년부터 올해 1분기까지 363개 공공기관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된 인원은 9만1303명이다. 3월 말 기준 공공기관 임직원 41만8203명의 21.8%에 달하는 수준이다. 

최근 3년여간 정규직 전환 인원이 가장 많은 공공기관은 한국전력공사로 8237명이다. 2016년 정규직 전환자가 0명이었던 한전은 2017년 234명이 전환된 데 이어 지난해 5688명이 한꺼번에 정규직 전환 실적으로 잡혔다. 올해 1분기에도 공공기관 중 가장 많은 2315명이 정규직이 됐다.

이어 한국도로공사(6959명), 한국철도공사(6163명), 인천국제공항공사(4810명), 한국공항공사(4161명), 한국토지주택공사(2952명), 강원랜드(2458명), 한국수력원자력(2312명), 중소기업은행(2145명), 한국마사회(1937명) 등이 정규직 전환자 규모가 컸다.

그러나 양적인 성과와 달리 질적인 면에서는 우려되는 점이 많다고 노동계는 지적한다.

공공기관은 정원과 인건비, 예산의 엄격한 통제를 받는 ‘총액인건비제도’ 적용 대상으로, 정규직 전환으로 인해 신규 채용이나 인건비 인상이 제한될 것이라는 게 공공기관 정규직 노조의 우려다.

게다가 공공기관의 적자 폭은 해마다 커지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공공부문의 지난해 흑자 규모가 13조 8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39조 3000억원 감소한 반면, 공공부문 인건비(피고용자 보수)는 158조 3376억원으로 전년 대비 6.6% 증가했다. 정규직 전환으로 인건비가 더욱 증가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페이스북에 “현행 공공기관 평가 기준은 정부가 정한 인건비 범위를 지켜야 경영평가 점수를 받을 수 있다”며 “정규직 인원이 늘어나 인건비 범위를 벗어나면 평가에 불이익이 발생하며 기존 정규직 처우에도 악영향을 준다. 정당한 인건비 상승을 반영하지 않는 현 제도에서는 노노 갈등을 해결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사진=인터넷]


◇공공기관 정규직 전환 위해 자회사 설립 '꼼수'

이밖에도 인천국제공항 보안검색요원 직접 고용의 경우 2017년 5월 이전 입사자는 공개경쟁 없이 정규직으로 직고용할 방침이어서 또 다른 ‘노노 갈등’이 제기되고 있다.

정규직 전환 선언 이후 입사자는 일반 지원자들과 함께 공개경쟁을 거쳐야 한다. 이 과정에서 기존 보안요원 중 상당수가 탈락할 수 있다며 형평성 문제를 제기한다.

또 자회사 소속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한 인천공항공사의 다른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한국공항공사, 인천항만공사 등의 비정규직들도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현재 공공기관은 비정규직의 47.1%를 자회사 전환 방식으로 채용했다.

한국전력의 경우 그동안 용역업체를 통해 고용했던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기 위해 지난해 3개의 자회사를 설립했다.

공공기관 정규직 전환에 있어 어느 직군을 직고용할지, 자회사를 둘지에 대한 기준도 명확치 않다는 것도 큰 문제다.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은 "공공기관에서 이뤄진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대부분 직접 고용이 아닌 '자회사로의 전환'이었다"며 “자회사 근무로 전환된 노동자들은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으면서 공공기관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적용해온 임금피크제까지 부당하게 적용받았다”고 주장했다.

연맹은 "공공기관 자회사 남발에 대한 정책실패를 인정해야 한다. 자회사를 없애고 모 기관에서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