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촌ㆍ조카 간 집단 경영체제로 현재까진 균형 잡고 있으나…

강지수 기자2020-07-10 17:02:20
[맏이의 눈물로 보는 승계의 법칙]③녹십자 창업주 차남이 세운 녹십자, 3세 차남 허은철 사장 '실질 후계자' 꼽혀 허영섭-일섭 전·현 회장일가 중 허진성 상무 경영보폭 확대에 관심

(왼쪽부터) 허은철 GC녹십자 사장, 허일섭 녹십자홀딩스 회장, 허용준 녹십자홀딩스 부사장. [사진=아주경제DB]


[데일리동방] '2세 차남'이 키운 녹십자를 '3세 차남'이 물려받을 수 있을까. 창업주 3세 차남인 허은철 GC녹십자 사장은 녹십자그룹의 '실질적 후계자'로 손꼽힌다. 그러나 삼촌인 허일섭 녹십자 회장 일가와 물밑경쟁이 점점 두드러지면서 어떤 결말을 맞게 될지 업계 관심이 쏠린다.
 
녹십자는 1967년 수도미생물약품에서 시작해 매출액 기준 국내 2위 제약회사로 입지를 굳혔다. 고(故) 허채경 한일시멘트 창업주가 1세이지만, 2세인 고 허영섭 녹십자 회장이 실질적으로 회사를 성장시키며 '창업주 1.5세'로 불리고 있다.
 
◆2세 차남에서 3세 차남으로?
 
고 허영섭 녹십자 회장은 고 허채경 한일시멘트 창업주의 차남이다. 허 회장의 세 아들 중 3세 차기 승계자로 거론되는 아들 역시 차남이다. GC녹십자 대표이사 허은철(48) 사장이다.
 
허은철 사장은 식품 관련 학위를 단계별로 이수하면서 전문성을 다졌다. 1994년 서울대 식품공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생물화학공학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2004년 미국 코넬대 대학원에서 식품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1998년 녹십자 경영기획실에 입사한 이후 연구·개발(R&D)기획실 상무이사, 전무이사, 최고기술경영자(CTO), 기획조정실장 등을 거쳐 왔다. 그가 대표로 있는 GC녹십자는 녹십자 지주회사인 녹십자홀딩스가 지분 50.06%를 보유한 사실상 핵심그룹이다.

 

녹십자그룹 핵심 지배구조와 녹십자홀딩스 지분 보유율. [자료=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고 허영섭 회장은 2009년 지병으로 숨지면서 보유하고 있던 지분을 가족에게 넘겼다. 이중 차남 허은철 사장이 가진 지분은 2.60%다.

동생인 허용준(46) 녹십자홀딩스 대표이사 부사장 또한 2.91%를 보유하고 있다. 허 부사장은 연세대를 졸업하고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경영학 석사학위(MBA)를 취득했다. 2003년 녹십자홀딩스에 입사해 경영·영업기획실 등을 두루 거쳤다.
 
반면 장남 허성수씨는 지분 상속에서 배제돼 0.61%를 보유하는 데 그쳤다. 고 허영섭 회장이 녹십자 지분 대부분을 복지재단 등에 기부하고 나머지는 자신을 제외한 가족에게 물려주라는 유언장을 남기면서다. 이 때문에 그는 고 허영섭 회장 사망 이후인 2009년 "유언이 어머니 정인애 씨에 의해 조작됐다"면서 유언효력정지 소송을 제기했다가 패소하기도 했다.
 
◆공동경영체제 '균형' 지속할까···일가 경쟁 움직임 속속
 
녹십자는 2017년부터 2세와 3세가 함께 참여하는 공동경영체제를 본격화했다. 요직을 나눠 맡으면서 자녀가 많은 녹십자그룹 오너가가 균형을 잡을 수 있었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창업주 2세 일가 간 경쟁은 지속 중인 것으로 보인다.
 
창업주 5남인 허일섭(66) 녹십자홀딩스 회장은 형인 고 허영섭 회장 사망 이후 경영권을 물려받았다. 허 회장은 2017년 독특한 선택을 했다. 본인 자녀 대신 형인 허영섭 전 회장 아들 허용준 씨에게 경영권을 승계한 것이다. 실질적 창업주인 형을 존중한 선택이었다는 평가도 나오지만, 자녀 중 장남이 당시 34세로 나이가 어렸고 녹십자에 입사한 지 4년 차에 지나지 않았던 점 등이 발목을 잡았을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본다.

이에 2017년부터 허용준 씨는 녹십자홀딩스 대표로 삼촌과 함께 그룹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은 녹십자 경영에서 핵심그룹 GC녹십자를 지배한 허은철 사장과 함께 삼각 구도를 이루고 있다.
 
허일섭 녹십자홀딩스 회장은 조카인 허은철 GC녹십자 사장과도 '목암연구소' 경영을 함께하며 균형을 잡고 있다. '목암연구소'는 녹십자홀딩스 지분 9.79%를 가진 공익재단이다. 허 회장은 대표로, 허 사장은 이사로 재직하고 있다. 허일섭 회장 입장에서는 형의 두 아들과 함께 경영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분율을 보면 일가 간 치열한 경쟁이 보인다. 창업주 5남인 허일섭 녹십자 회장과 자녀가 보유한 녹십자홀딩스 지분은 13.97%로 일가 중 가장 많다. 반면 허영섭 전 녹십자 회장 일가가 보유한 지분은 6.03%에 불과하다. 여기에 허 전 회장이 사망하면서 출연한 재단 2곳 지분을 합해도 총 12.51%로 5남 일가와 비교해 적다.
 
일각에선 허은철 사장이 핵심그룹 GC녹십자를 운영하는 만큼 지분율과 관계없이 그룹을 지배할 것이란 전망이 있다. 삼촌인 허일섭 녹십자 회장은 일부 계열사를 나눠 가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그러나 한편에선 지분율과 관계없이 후계 구도와 관련한 분쟁 소지가 남아 있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새로운 경쟁자는 허일섭 녹십자 회장의 장남 허진성(37) 상무다. 허 상무는 2014년 3월 녹십자홀딩스 경영관리실 부장으로 입사했다. 학력은 알려진 것이 없다. 입사 4년 만인 2018년에는 녹십자 핵심 계열사인 녹십자바이오테라퓨틱스 상무로 승진했다. 

허진성 상무가 보유한 지주 지분은 0.69%로 허영섭 전 회장 일가 자녀에 비하면 많지 않다. 그러나 그룹 내에서 빠르게 보폭을 넓혀 가면서 아버지인 허일섭 회장이 승계 구도를 다지는 모습이 드러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녹십자는 승계 구도 예측은 성급하다는 입장이다. 녹십자홀딩스 관계자는 "허일섭 회장이 활발하게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상태"라면서 "선대회장인 형의 자녀이기에 별다른 갈등 없이 사촌·조카 간 공동경영이 잘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