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의 위기에도 계속되는 현장방문, 할아버지 어록에 이유 있다

이범종 기자2020-07-31 13:45:11
반도체 호실적 발표일 "머뭇거릴 시간 없다" 창업주 이병철 회장 "잘 될 때 불행 각오" 기소 위기와 코로나19에 필요한 선대 경영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30일 온양사업장에서 간담회를 열고 직원들을 격려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제공]

[데일리동방]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현장 경영을 멈추지 않고 있다. 어닝 서프라이즈와 기소 위기가 동시에 동시에 찾아온 상황에서 선대의 경영 철학을 돌파구로 삼는 모습이다.

이 부회장은 30일 삼성전자 온양사업장에서 차세대 반도체 패키징 기술개발 계획 등 중장기 전략을 점검했다. 그는 인공지능(AI)과 5G 통신모듈, 초고성능 메모리(HBM) 등 미래 반도체 생산에 쓰이는 차세대 패키징 기술을 살폈다. 이 부회장은 “포스트 코로나 미래를 선점해야 한다”며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고 당부했다. 도전을 통한 도약과 끝없는 혁신도 강조했다.

올해 그의 간담회와 경청 행보는 1월 설 연휴 브라질 마나우스·캄피나스 법인 방문을 시작으로 구미 스마트폰공장(3월), 반도체연구소(6월), 생활가전사업부(6월), 삼성디스플레이(6월), 사내벤처 C랩(7월), 삼성전기 부산사업장(7월) 등으로 꾸준히 이어졌다.

이번 현장 방문은 삼성전자가 2분기 영업이익 8조1500억원으로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한 날 진행됐다. 그의 불법 경영 승계 의혹 사건을 수사해온 검찰이 기소 여부를 결론내지 않아 위기가 고조된 시점이기도 했다.
 

이병철 삼성 창업주. [사진=삼성]

◆“뜻하지 않게 좌절해야 강해진다”

환호와 우려가 교차하는 시점에서 이 부회장이 택한 길은 ‘불행을 각오하고 나아가야 한다’는 선대 회장의 경영철학이다. 이 부회장 할아버지이자 삼성 창업주 고(故) 이병철 회장은 1975년 전국경제인연합회 ‘최고경영자와의 대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일이 잘 돼 나갈 때 오히려 다가올 불행을 각오해야 한다. 기업가도 뜻하지 않은 좌절을 겪어본 기업가가 좌절을 모르고 자라난 기업가보다 훨씬 더 강인한 기업경영 능력을 갖고 있다.”

반도체 신화를 이끈 아버지 이건희 회장 역시 초격차 경영에 필요한 위기의식을 심어줬다. 그는 2005년 1월 신년사에서 “그동안은 세계의 일류 기업들에게 기술을 빌리고 경영을 배우면서 성장해 왔으나 이제부터는 어느 기업도 우리에게 기술을 빌려 주거나 가르쳐주지 않을 것”이라며 “앞으로 우리는 기술 개발은 물론 경영 시스템 하나하나까지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 자신과의 외로운 경쟁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도체 30년 기념식이 열린 2004년 12월에는 ‘TV도 제대로 못 만드는데 너무 최첨단으로 가는 것 아니냐’던 경영진의 만류를 회상했다. 삼성이 살 길은 최첨단 산업뿐이므로 반도체 선점 투자는 앞으로도 중요하다는 의미다.

이 부회장 역시 지난달 현장을 챙기면서 “가혹한 위기상황”(화성 반도체 연구소), “자칫하면 도태된다”(수원 생활가전사업부)는 말로 임직원을 독려했다.

꾸준한 현장 방문이 중요한 이유는 할아버지가 이미 설명해 놨다. 이병철 회장은 1983년 6월 반도체 회의 때 “사장이라고 하더라도 잘 모르는 경우에는 가리지 말고 물어봐야 한다”며 “그렇게 해서 2~3년이 지나면 물어보는 횟수가 차츰 줄어들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말했다. 회사는 총수 혼자 경영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 전체가 과거 경험을 살려 움직인다는 설명이다. 1979년 간담회 때는 “꼭대기에서부터 저 밑에까지 알아야 참다운 경영자가 될 수 있다”며 “현장을 모르는 경영자가 어떻게 큰 방향을 잡을 수 있겠는가”라는 말도 남겼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2011년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에서 열린 선진제품 비교전시회에서 권오현 당시 사장(DS총괄사업장 現 삼성전자 상근고문)으로부터 반도체 사업 현황과 신기술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제공]

◆인재양성·기후행동…100년 기업 향한 실천

이 부회장은 이 같은 선대의 경영 철학을 과거의 경험 삼아 실천하고 있다. 우선 반도체 초격차 투자가 한창이다. 삼성전자는 올해 경기도 평택캠퍼스 2라인에 낸드 플래시 생산라인 투자를 단행했다. 제품은 2021년 하반기 양산한다. 이번 투자는 AI와 사물인터넷(IoT) 등 4차 산업혁명 도래와 5세대 이동통신(5G) 보급에 따른 중장기 수요 대응, 메모리 초격차를 위한 결정이다. 이 부회장은 5월 중국 당국의 플래시 메모리칩 협력 강화 약속도 받아냈다.

지난해 4월 발표한 ‘반도체 비전 2030’ 후속조치도 진행 중이다. 삼성전자는 평택 캠퍼스 내 EUV(극자외선) 파운드리 생산시설도 짓는다. 지난해 4월 회사는 시스템 반도체에 133조원 투자와 1만5000명 채용, 생태계 육성 지원 방안 등을 발표했다.

삼성전자가 지원하는 다양한 연구과제는 세계적 학술지에 실리며 성과를 인정받고 있다. 2013년 1조5000억원 출연으로 시작된 ‘삼성미래기술육성사업’은 지금까지 601개 과제에 7713억원을 집행했다. 국제학술지에 실린 논문은 1244건이다. 사이언스와 네이처 등 최상위 학술지에는 96건이 실렸다. 이번달에는 △6G 기술에 필요한 신호 시간 측정·제어 기술 △색 재현성이 2배 높은 퀀텀닷(QD) 디스플레이 △중증 코로나19 환자에게 발생하는 사이토카인 폭풍(과잉 염증반응) 원인 규명 연구들이 각각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 ‘어드밴스드 머티리얼즈’, ‘사이언스 이뮤놀로지’에 실렸다.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에게 소프트웨어 교육을 제공하는 ‘삼성 청년 소프트웨어 아카데미(SSAFY)’도 운영중이다. 2018년부터 고용노동부와 함께 진행하는 이 프로그램은 올해 1월 3기 750명이 입학해 소프트웨어 개발자의 꿈을 키우고 있다. 1기 수료생 일부는 삼성전자에 입사해 3기 입학식 때 ‘선배와의 대화’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이병철 회장은 인재 제일과 인간본위 정신을 강조했다. 그는 1982년 언론 기고문에서 “인재양성에 대한 기업가의 기대와 정성이 사원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에 전달돼 있는 한 그 기업은 무한한 번영의 길을 걸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선대의 지혜로 현재를 살아가는 이재용 부회장의 꿈은 ‘인류사회에 공헌하는 100년 기업’이다. 그는 지난해 11월 삼성전자 50주년 기념 영상에서 미래 세대에 물려줄 100년 기업을 만들자고 임직원을 독려했다. 이 부회장은 “우리의 기술로 더 건강하고 행복한 미래를 만들자”며 “같이 나누고 함께 성장하는 것이 세계 최고를 향한 길”이라고 말했다. 미래 먹거리와 사회적 책임으로 1위 이상의 가치, 성원 받는 기업을 만들겠다는 약속이다.

세계적 기업답게 실천도 전 지구적이다. 삼성전자는 2018년 6월, 미국·유럽·중국지역 모든 사업장에서 2020년까지 100% 재생에너지 사용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약속의 달성률은 지난해 92%에 달했다. 올 연말 100% 전환 달성도 차질이 없다고 삼성전자는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