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테크놀로지그룹 ‘형제의 난’ 불씨 지핀 누나, 소방수 자처한 아버지

이범종 기자2020-07-31 18:34:58
장녀 조희경 이사장, 성년후견개시 심판청구…“평소 철학과 달라” 조양래 회장 “둘째에게 경영권 넘기는 것 미리 생각해 둔 일” '장남 대신 나선 것' 해석도…조 이사장 "경영권 상관없이 진행"

조현범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대표가 4월 17일 오후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집행유예 선고를 받고 법원을 빠져나가고 있다. [사진=이범종 기자]

[데일리동방] 한국테크놀로지그룹도 경영권 시비를 피하지 못했다. 조양래 회장의 장녀 조희경 한국타이어나눔재단 이사장이 “아버지의 객관적 판단이 의심된다”며 법원의 판단을 요청하면서 경영권 갈등의 서막이 올랐다.

그간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조양래 회장은 결국 31일 펜을 들고 대중 앞에 나서야 했다. “첫째 딸이 성년후견인 개시심판을 청구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가족 간의 불화로 비치는 것이 정말 부끄럽고 염려되는 마음”이 들어서다.

전날 조 회장의 장녀 조희경 이사장은 서울가정법원에 아버지에 대한 성년후견 중 한정후견개시심판청구를 접수했다. 성년후견제도는 질병이나 노령 등으로 사무처리 능력이 지속해서 결여된 성인에게 후견인을 지정하는 제도다. 한정후견은 사무처리 능력이 부족한 경우 일부분 후견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경우다.

조 이사장은 지난달 26일 아버지 조 회장이 차남인 조현범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옛 한국타이어) 사장에게 그룹 지분 전량인 23.59%를 넘긴 점이 평소 신념과 전혀 다르다고 주장한다.

그는 30일 보도자료를 내고 “그 직전까지 그런 계획이 전혀 없다고 말씀하셨다”며 “평소에 주식을 공익재단 등 사회에 환원하고자 하셨으며, 사후에도 지속 가능한 재단의 운영방안을 고민하고 계셨다”고 말했다.

이번 승계가 “기업 총수의 노령과 판단 능력 부족을 이용하여 밀실에서 몰래 이루어지는 관행”이라는 주장도 폈다.

이에 조 회장은 입장문에서 “정말 사랑하는 첫째 딸이 왜 이러는지 이해가 되지 않고, 저야말로 저의 첫째 딸이 괜찮은 건지 물어보고 싶은 심정”이라고 반문했다.

지난 15년 동안 조현범 사장에게 실질적인 경영을 맡기면서 최대주주로 점 찍어 두었다는 설명이다.
 

조양래 한국테크놀로지그룹 회장. [사진=한국테크놀로지그룹 제공]

조 회장은 “최근 몇 달 동안 가족 간에 최대주주 지위를 두고 벌이는 여러 가지 움직임에 대해서 더 이상의 혼란을 막고자 미리 생각해 두었던 대로 조현범 사장에게 주식 전량을 매각한 것”이라며 의미심장한 설명을 덧붙이기도 했다.

또한 매주 친구들과 골프를 즐기고, 하루 4~5㎞ 이상 걷기 운동도 한다며 건강 이상설을 반박했다.

그는 작심한 듯 “경영권에 대한 욕심이 있는 거라면, 저는 딸에게 경영권을 주겠다는 생각은 단 한 순간도 해본 적이 없다”고 적기도 했다. 딸 조 이사장이 회사 경영에 관여한 적이 없는 데다 가정주부로 잘살아왔으며 자식들에게 충분한 유산을 물려줬다는 설명도 보탰다.

딸이 한정후견 신청 이유로 내세운 공익활동 역시 나름의 방법을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이를 두고 장남 조현식 부회장이 전면에 나서기를 꺼려 조 이사장을 내세운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다. 하지만 조 이사장 측은 “한정후견 신청을 앞두고 남매간 논의는 없었다”며 “경영권과도 전혀 상관없이 진행한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회사 측도 그간 형제의 난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형제경영에 변함이 없다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세간의 초점은 경영권 다툼에 맞춰져 있다. 특히 조 회장이 ‘최대주주 지위를 두고 벌이는 여러 가지 움직임’을 언급하면서 경영권 다툼이라는 관측에 힘이 실리게 됐다.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은 두 아들의 배임·횡령 재판과 함께 경영권 다툼의 늪에 빠지게 됐다. 일단 남매간 지분율만 놓고 보면 조현범(42.9%) 사장을 앞지를 수 있는 형제는 없다. 조현식(19.32%) 부회장과 조희원(10.82%)·조희경(0.83%)씨 지분을 모두 합쳐도 30.97%에 불과하다. 국민연금공단(6.24%) 지분을 합쳐도 37.21%다.

조 사장이 나머지 남매와 대등한 지분율로 맞서기는 벅차다. 형과 나란히 2심 재판을 받는 점도 부담이다. 게다가 법원이 조 회장에게 후견인이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주식 양수 무효 소송도 가능하다.

아버지를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남매 간 싸움이 긴 후유증을 남길 수도 있다. 롯데는 고(故) 신격호 전 총괄회장을 사이에 두고 장남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회장과 신동빈 롯데 회장 간 형제의 난을 벌였다. 5년이 지나 싸움은 동생 신동빈 회장의 승리로 끝났지만 형은 아직도 항복선언을 하지 않고 있다. 한진그룹도 창업주 고 조중훈 회장 사후 형제간 갈등을 보이며 남보다 못한 사이로 갈라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