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기업’S토커] M&A로 성장한 SK, 사회적가치로 내년 재계2위 넘본다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이범종 기자
2019-12-26 07:18:00

⑤SK그룹-1 : 폐허 공장 살려낸 최종건·종현 형제, 섬유기업 수직계열 토대

유공 인수로 규모 급상승…이동통신·반도체 인수로 매머드급 성장

2세 최태원, 사회적가치로 장기적 이익 고민 '기업 돌연사' 막아야

최태원 SK회장이 지난 17일 서울 종로구 서린동 SK빌딩에서 '보이는 라디오' 형식의 99차 행복토크를 하고 있다.[사진=SK그룹 제공]

슈퍼마리오는 버섯을 세 번 먹어도 한 번만 커진다. 반면 SK그룹은 세 번의 굵직한 인수합병(에너지・통신・반도체)을 거듭하며 재계 2위 자리를 노리고 있다. 그런데 무한경쟁시대 강자로 올라선 총수는 행복론과 사회적 가치를 다음 도약의 조건으로 내세운다. 이 특이한 그룹의 역사는 사람을 중심에 둔 경영철학에 뿌리를 둔다.

최태원 SK 회장은 18일 서울 서린동 SK빌딩에서 주요 관계사 직원들과 100번째 행복토크를 마쳤다. 그는 지난 1년간 지구 반 바퀴 수준인 3만9580㎞를 이동하며 1만1400여명과 토론했다. 최 회장은 SK 구성원만이 아닌 지속 가능한 사회 구성원의 행복을 고민하고 있다. 기업의 존속・발전과 뗄 수 없는 가치라고 믿기 때문이다. 사회 문제 해결로 이윤을 추구하겠다는 ‘사회적 가치’ 행보의 뿌리는 선대 회장의 경영 이념과 무관치 않다.
 

최종현 SK 선대회장. [사진=SK그룹 제공]

◆형제애와 향토애가 키워낸 선경

최종건 창업 회장은 1944년 경성직업학교 기계과를 졸업한 뒤 경기도 수원 선경직물 공장에 입사했다. 광복으로 공장 소유권이 일본인에서 미군정으로 넘어간 뒤 생산부장이 된 최 회장은 반년간 방치된 직기들을 직접 고쳐 1946년 2월 조업을 재개했다. 공장은 1948년 정부 소유로 넘어갔다. 한국전쟁 이후 그는 무너진 공장과 시설을 직원들과 함께 고쳤다.

오늘날 SK가 살아있는 이유는 형제애로 봐도 무방하다. 1953년 창업회장 부친은 서울대생인 차남 최종현 회장의 미국 유학비용을 고민하며 사업 실패를 거듭한 장남의 지원을 망설였다. 이에 최종현 회장은 유학을 미루고 형님 사업 지원을 간청했다. 우여곡절 끝에 선경직물 공장부지 매입에 성공한 최종건 회장은 1956년 ‘닭표’ 인조견으로 시장을 휩쓸었다. 해방 전부터 써 오던 사명인 선경(鮮京)은 선만주단과 경도직물을 합친 이름이지만, 최 회장은 빛날 선에 클 경의 선경으로 해석하고 선경직물을 상법상 주식회사로 등록했다.

이후 봉황새를 수놓은 ‘봉황새 이불감(1958년)’과 ‘곰보 나일론(1960년)’으로 승승장구하던 회사는 1962년 4월 인견직물 수출에 성공했다. 하지만 직기 100여대 교체와 업계 과열 경쟁, 손해를 감수한 수출과 여름 불황 등으로 자금력이 약해졌다. 미국 시카고대 대학원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최종현 회장은 1962년 부친의 별세와 형님의 설득으로 귀국해 선경직물 부사장에 취임했다. 최종현 회장은 같은해 일본의 가격 횡포에 맞서려는 홍콩 현지 수입업자들을 만나 당시 수출량의 30배인 인견능직 300만마(직물 길이로 약 91㎝) 수주에 성공했다. 선경직물은 이후에도 1964년 크레퐁(구불구불한 주름 있는 직물)과 앙고라(폴리에스터 연신사로 만든 원단), 1965년 여름철 모시 대용인 ‘깔깔이(조제트 직물 활용)’ 등으로 흥행을 이어갔다.
 

인도네시아에 수출하기 위해 폴리에스터 원면을 선적하는 모습. [사진=SK그룹 제공]

경영이념 SKMS 세우고 사업 다각화

SK 성장의 이정표가 되어온 기업 인수는 1966년 해외통상이 처음이었다. 원자제에서 완제품에 이르는 수직적 기업결합 신호탄이었다. 이후 최종건 회장 건강 악화로 사장에 오른 최종현 회장은 구조조정과 중구난방인 용어 정리로 경영 효율화에 나섰다. 그의 조직 운영 조정 이론은 훗날 기업 정관인 ‘SKMS(선경경영관리체계・Sunkyong Management System)’의 초석이 됐다. 최 회장은 회사가 21세기 서구 기업과 경쟁하려면 그들이 이미 앞선 마케팅과 재무, 연구개발(R&D)이 아니라 지난 300년간 기존 경제학이 해결 못한 문제를 경쟁 우위 요소로 삼아야 한다고 봤다. 그것은 사람의 능력을 제대로 활용하는 법이었다.

1980년대 중반부터 전세계 기업과의 무한경쟁을 직감한 최종현 회장은 개념 위주로 만들어진 SKMS의 효율화 일환으로 1989년 수펙스(SUPEX)추구법을 정립했다. 수펙스는 ‘Super Excellent’를 합친 조어다. 인간의 능력으로 도달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을 뜻한다. 부서장이 수펙스 추구 리더십으로 구성원을 이끌고 돕고 확인해 회사 이익이 날 경우 그 일부를 구성원이 특별 상여금이나 포상으로 나눠갖는 제도도 생겼다. 최종현 회장은 훗날 1994년 한국이동통신 인수 성공이 수펙스 추구의 산물이라고 자평했다.

선경의 사업다각화는 1972년 11월 조림사업을 위한 서해개발 설립과 12월 워커힐호텔, 계열사 선일섬유 흡수합병 등으로 시작됐다. 상호가 ㈜선경으로 바뀐 뒤에는 생산업체 계열화와 해외지사 확보 등으로 1976년 종합무역상사로 지정됐다. 이듬해에는 선경건설(현 SK건설)을 세웠다. SK건설은 국토교통부가 올해 7월 발표한 시공능력평가에서 11위를 차지했다.

매체 관련 사업에도 성공적으로 진출했다. 선경화학은 1980년 12월 미국과 서독, 일본에 이어 세계 네 번째 컬러 비디오테이프 개발에 성공했다. 5년간의 시행착오와 좌절 끝에 얻은 결과였다.
 

1991년 6월 유공 울산컴플렉스 준공식. [사진=SK그룹 제공]

◆한국석유공사 인수로 재계 5위 껑충

오늘날 SK그룹의 외형이 가장 커진 시기도 1980년이다. 그해 8월 유공의 경영 주체였던 미국 걸프(Gulf)는 1962년 설립 때부터 가진 지분 50%를 양도하고 철수했다. 잉여 원유를 한국에 공급해 이익을 늘리려던 전략이 1978년 2차 석유파동으로 흔들려서다. 정부의 정유산업 규제 강화도 유공의 수익성 악화로 이어졌다. 또한 1974년 이후 배당금과 유보이익이 2차 투자액의 150%에 도달할 때까지만 유공 주식 50%와 경영권을 갖고, 이후 주식 25%를 한국 정부에 이양한다는 협약을 이행해야 했다. 걸프는 당시 평가액 9300만달러를 회수하며 사업에서 철수했다. 1980년 10월 정부의 민영화 발표 이후 재계는 각축전을 벌였다. 1979년 국내 기업 최초로 매출액 1조원을 넘어선 초우량 기업의 향방이 재계의 판도를 뒤바꾸게 될 상황이었다.

선경의 유공 인수는 당시 10위 안팎이던 이 회사를 단번에 재계 5위로 끌어올렸다. 최종현 회장이 1973년 석유에서 섬유까지 수직계열화를 천명한 지 7년 만이었다. SK는 2013년 발간한 ‘SK 60년사’에서 1973년 정유공장 설립과 1976년 사우디아라비아 왕자 초청 등 노력의 결과라고 설명했다. 특히 1977년 최 회장이 사우디 야마니 석유상 초청을 받고 선경이 정유사업을 할 경우 상당량의 원유를 공급한다는 언질을 한 점이 결정적이었다고 SK는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최태원 SK 회장이 노태우 전 대통령 딸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 결혼한 점을 근거로 선경이 특혜를 받았다고 폄훼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1988년 9월에 결혼했다. 1980년 서로를 몰랐던 이들은 미국 유학시절 만나 연애 결혼했다. 최종현 회장은 유공 인수 2년 전부터 걸프 움직임을 감지하고 사내에 태스크포스를 만들어 인수를 준비했다.

선경의 수직계열화는 1991년 6월 유공 울산컴플렉스 준공으로 완성됐다. 9개 공장 설립으로 선경은 원유개발에서 정유, 석유화학, 필름, 원사, 섬유, 봉제에 이르는 완전 수직계열화에 성공했다. 유공은 이후 1995년 윤활유 지크(ZIC) 출시로 시장을 장악했다. 국내 최초 브랜드 휘발유 엔크린도 흥행했다. 엔크린은 이듬해 국내 최초로 일본에 수출되기도 했다.
 

1998년 SK CI(Corporate Identity·기업 이미지 통합) 선포식. [사진=SK그룹 제공]

◆도전과 좌절 끝에 거머쥔 SK텔레콤

유공이 SK 도약의 첫 편이었다면 후속작은 이동통신이다. 최 회장은 1980년대 중반부터 차세대 성장사업으로 정보통신을 선택했다. 기존 산업이 공고한 자동차와 가전제품, 중공업은 2000년대를 열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반면 정보통신은 잠재력이 가장 컸다. 최 회장은 미국의 정보와 기술을 얻기 위해 1984년 텔레커뮤니케이션팀을 만들고 우수인력 확보와 해외 투자 기회 관측에 나섰다. 1989년에는 미국에 유크로닉스사를 세우고 현지 정보통신 관련 기술조사와 용역 제공을 맡겼다. 1991년 설립된 선경텔레콤은 이듬해 대한텔레콤으로 이름을 바꾸고 제2이동통신 사업권 획득에 나섰다.

그해 4월 체신부의 ‘통신사업 구조조정 계획’으로 재계에는 또 한 번의 지각변동이 예고됐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이자 6공 최대 이권사업의 주인을 향한 세간의 관심은 날로 커졌다. 6개 기업이 뛰어든 사업권 획득전의 1차 심사 발표에서 선경은 압도적인 1위에 올랐다. 이를 두고 최태원 회장을 사위로 둔 노태우 대통령이 편의를 봐줬다는 해석이 난무했다. 선경은 2차 심사 때도 최고점을 받았다. 그러나 여론은 차가웠다. 최종현 회장은 사업권을 포기했다. 정부도 사업자 선정을 다음 정권에 이양하기로 했다.

최 회장은 제2이동통신 사업을 포기하는 대신 당시 정부가 내놓은 한국이동통신 인수로 방향을 틀었다. 한국이동통신은 1984년 한국통신에서 분리, 자회사로 세워져 무선전화 사업을 하고 있었다. 선경은 제2이동통신 사업권을 반납한 지 20개월만인 1994년 7월 한국이동통신 경영권을 획득했다. 이동통신 1위 SK텔레콤의 시작이었다.

한국이동통신은 1994년 11월 이동통신 원천기술인 CDMA(코드분할 다중접속) 방식 체계 운용 시험에 성공했다. 개인휴대통신(PCS) 표준을 두고 TDMA(시분할다중접속)를 내세운 한국통신과의 경쟁에서 이긴 한국이동통신은 1996년 첫날 인천과 부산에서 세계 최초 CDMA 서비스를 시작했다.

1997년 이름을 바꾼 SK텔레콤은 '스피드 011' 브랜드를 내세워 통화 음질과 서비스를 개선했다. 이듬해 5월 SK텔레콤 이동전화 가입자 수는 500만명을 돌파했다. 하지만 저렴한 PCS 상품을 찾던 20대 시장점유율은 20%에 불과했다. ‘신비소녀’ 임은경이 등장한 시점이 이때다. 회사는 1999년 7월 ‘스무살의 011’을 내세운 브랜드 TTL 광고로 1020 세대를 사로잡았다. 젊은층을 노린 단말기 디자인과 통화 패턴에 맞춘 요금제를 만들면서 그해 말 이동전화 가입자 1000만명을 돌파했다.

휴대전화 제조업체 SK텔레텍은 1998년 12월 스피드 011 서비스에 가장 잘 맞는 ‘스카이(SKY)’ 단말기를 내기 시작했다. 스카이폰은 검은색 일색이던 시장에 흰색 제품으로 주목받았다. 국내 최초 디지털 카메라폰과 슬라이드폰도 스카이였다. 1998년 1월 사명을 SK로 바꾸며 진정한 수펙스(S) 추구로 고객과 세계가 OK 할때까지 21세기를 열겠다고 결의한 지 1년만이었다. 계열사 이름은 1997년부터 SK로 통일되고 있었다. 훗날 SK텔레텍 주식 대부분은 2005년 팬텍앤큐리텔에 매각됐다. SK텔레콤이 시장점유율 제한에 따른 규제 리스크에서 벗어나려는 의도였다. 한때 한국사회 매개체였던 ‘싸이월드’는 네이트닷컴을 운영하던 SK커뮤니케이션즈가 2002년 합병해 운영하기도 했다.
 

1998년 SK주식회사 대표이사에 선임된 최태원 회장(사진 오른쪽). [사진=SK그룹 제공]

◆가족이 단합해 힘 실어준 2세 최태원

SK그룹의 2세 시대는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1998년 열렸다. 최종현 회장이 그해 8월 폐암으로 유명을 달리한 뒤 최태원 당시 부사장은 대주주 가족회의로 대표권을 위임받았다. 최태원 회장의 경영능력을 높이 산 최윤원 회장은 자신이 장자임에도 최태원 회장을 중심으로 단합해야 한다며 힘을 실어줬다. SK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수펙스 추구협의회는 대주주와 전문경영인이 항상 힘을 합쳐야 한다는 선대 회장의 유지를 따라 손길승 부회장을 최종현 회장에 이은 협의회 의장으로 선임했다. 수펙스 추구협의회는 IMF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5월 SKMS와 수펙스 추구에 따른 정보 교류를 위해 설치됐다.

SK텔레콤 등이 손 부회장을 대표이사 회장에 선임했고 최태원 부사장은 SK㈜ 대표이사 회장에 앉았다. 최윤원 부회장은 SK케미칼 대표이사 회장에 선임했다.

위기는 한순간에 밀려왔다. 2003년 창업 50주년을 맞은 SK는 SK글로벌(現 SK네트웍스) 분식회계 수사를 계기로 주요 계열사별 독립경영 체제를 만들었다. 당시 소버린자산운용 자회사 크레스트증권이 SK 수사와 재판으로 가격이 떨어진 주식을 대량 매입해 경영권을 위협하기도 했다.

부침을 겪던 최 회장은 2004년 SK 기업 이념을 ‘이윤 극대화’에서 ‘행복 극대화’로 바꿨다. 복잡해진 시대의 기업은 고객과 구성원, 주주와 사회 등 이해관계자들의 행복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철학이었다. 사회적 가치 창출은 SK그룹의 헌법격인 SKMS에 2016년 추가됐다. 사회 성과는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함께 만들어 관리하는 더블 바텀 라인(Double Bottom Line・DBL)으로 측정한다. 싱글 바텀 라인은 경제적 가치만 측정・관리하지만 더블 바텀 라인은 사회적 가치를 포함한다. 이를 경영 의사결정에 반영해 기업 역량과 인프라로 사회 문제 해결에 앞장선다.

SK는 올해부터 CEO 핵심성과지표(KPI) 50%를 사회적 가치로 매긴다. 각 계열사는 회사와 사업 특성에 맞춰진 KPI를 활용한다. 기업의 생존 조건이 주주 이익 배당에서 가치 있는 기업의 이익 배당으로 바뀌었다는 판단이다.
 

2012년 3월 SK하이닉스 출범식. [사진=SK그룹 제공]

◆도약 발판 SK하이닉스, 사회적 가치 역할 기대

SK가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 된 때는 2007년이다. SK㈜는 지주회사와 사업자회사로 분할하고 자회사 독립경영으로 효율성 증대를 도모했다. 지주사는 기존 이름을 잇고 사업자회사로 SK에너지가 분할됐다. 하지만 IT회사 SK C&C가 지주사 SK를 지배하면서 옥상옥 형태로 유지되다 2015년 주식 교환으로 흡수 합병해 사업형 지주사 SK로 운영되고 있다.

최태원 시대 SK의 도약은 하이닉스 인수다. 1983년 현대전자산업주식회사로 출범한 회사는 1999년 김대중 정부 빅딜 정책으로 LG반도체를 흡수합병했다. 하이닉스는 외환위기 영향으로 위기를 맞은 현대그룹에서 계열분리돼 채권단공동관리(워크아웃) 체제로 전환됐다. 수조원대 인수대금 때문에 번번히 무산되던 매각은 SK가 마무리했다. 종합전자회사로 TV와 백색가전을 만들던 하이닉스 사업구조는 각 사업부 매각을 거쳐 메모리반도체 중심으로 돌아섰다. 2012년 3월 공식 출범한 SK하이닉스는 주요 반도체 회사로 명성을 날리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3분기 SK하이닉스의 D램 세계 점유율은 삼성전자(46.1%)에 이어 2위(28.6%)를 차지했다. 낸드플래시 역시 세계 시장 6위로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첨단 기술로 무장한 SK는 최 회장의 사회적 가치를 실현할 조건을 갖추고 있다. SK그룹은 6월 SK텔레콤·C&C·하이닉스·플래닛·브로드밴드·11번가·실트론 등 계열사와 함께 'SK 오픈 API 포털’을 공개했다. API는 어플리케이션 프로그래밍 인터페이스(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 줄임말로 소프트웨어와 서비스를 구성하는 기본 요소다. 자원이 부족한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이 이들 계열사의 지도와 인공지능(AI), 5G 기술 상당부분을 무료로 활용하고 사업 규모가 커질수록 유료 기술을 찾게 되는 상생 경영 구조다. SK텔레콤도 서울 6개구와 경기 화성시, 대전 서구 독거노인 2100여명에게 음성인식 AI 스피커 ‘누구(NUGU)’를 보급하고 있다.

최태원 회장이 추구하는 사회적 가치는 단순한 선의가 아니다. 이윤추구와 사회 문제를 따로 두기를 고집하면 기업 생존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판단이다. 그는 2017년 8월 ‘제1회 이천포럼’ 강연에서 근육만 키우면 관절이 망가지듯 기업이 돈만 많이 벌려고 하면 관절의 부담이 커진다고 지적했다. 기업이 함께하는 사회혁신이 관절운동이고, 사회적 가치를 창출해야 서든데스(sudden death・돌연사)를 피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사회적 가치로 장기적 이익을 도모하는 최태원 회장은 이윤 추구와 사회 공헌이 구분되던 시대를 마감하려 한다. 사회적 가치로 경제적 가치를 끌어올리는 데 성공한다면 SK의 도전은 실험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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