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의 금융춘몽

① 시대를 앞선 비운의 혁신 '모네타'를 아시나요

김태환 기자입력 2020-09-03 07:57:27
SKT, 삼성페이(2015년) 같은 간편송금ㆍ결제서비스 '원조' 2002년에 첫선 재경부 엘리트 영입ㆍ1위 모바일 플랫폼 활용…'SK금융' 야심 찬 계획 수요 예측 참패ㆍ무리한 인프라 구축에 나서다 불법 송금 사고 터져 2007년 첫 아이폰 출시 계기로 스마트폰 대중화 눈앞서 쓸쓸히 퇴장

[모네타에서 지원했던 증권정보 제공 서비스 '모네타온' 사용 화면, 사진=SK텔레콤 제공]

금융과 정보통신기술(ICT)의 융합. 그야말로 대세다. 카카오와 네이버가 이를 증명한다. 국내 통신사업자 1위 SK텔레콤(SKT)도 강력한 통신 플랫폼을 갈고닦아 오랫동안 꿈을 꿨다. 그러나 지난 십수 년을 돌아보면 아쉬움이 정말 많다. 패러다임 변화기에 치밀하지 못한 경영 판단 실수로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데일리동방은 4회에 걸쳐 SK의 실패사례로 핀테크를 넘어 테크빅 시대를 대비하는 전략을 알아본다. [편집자]

휴대전화에 스마트칩을 내장해 신용카드로 물건을 사고, 멤버십 적립도 받는다. 요즘 얘기가 아니다. SK텔레콤은 '모네타'라는 이름으로 2002년에 이런 서비스를 내놨다. 2G폰 시대의 얘기다. 당시 금융업계는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모네타는 그러나, 시대를 앞선 비운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IC칩이라는 것 자체가 생소했던 시기여서 상대적으로 비쌌던 칩 가격과 오프라인 가맹점 결제 망의 부족을 극복하지 못해, 실제 소비자에게 다가서지 못했다. 가입 고객 규모보다 실사용자가 매우 적은 상태가 이어지다가 가입자 예금이 불법으로 인출되는 사고가 터지면서 쓸쓸히 사라졌다.

◆ 재경부 엘리트가 밑그림 그린 'SK금융' 야심작

모네타는 유심칩을 휴대전화에 내장해 실물 플라스틱 신용카드 대신 휴대전화로 결제하도록 지원하는 게 핵심 서비스였다. 인터넷 결제는 물론, 일반 가맹점에서 휴대전화로 결제하도록 했다. 현금자동입출금기(ATM)에서도 출금할 수 있었다.

2003년부턴 신용카드 외에 교통카드, 은행 계좌 조회와 입출금, 전자화폐, 멤버십 서비스 등의 기능을 추가해 금융권을 바짝 긴장시켰다. 현재 스마트폰에서 사용하는 삼성페이와 같은 간편송금 결제의 원조로 손색이 없었다.

당시 사업은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출신의 차진석 모네타 사업본부장(상무)이 주도했다. 차진석 상무는 행정고시 합격 후 국세청, 재정경제부를 거친 엘리트 관료 출신이다. 재경부 재직 당시엔 스위스 제네바를 왕래하면서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을 마무리하는 데 일조했다.

2001년 차 상무는 SKT 신사업본부를 맡아 모네타 사업의 밑그림을 그렸다. 당시 SK그룹은 국내 4대 그룹 중 금융사업이 가장 부진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SK는 차 상무의 밑그림을 토대로 IT와 금융의 결합인 핀테크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에서 보면, 소비자들의 인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성급하게 서비스를 시장에 내놓고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을 받는다.

당시엔 지금의 휴대전화에 장착된 유심(메모리칩)처럼 자동으로 금융 결제 기능을 제공할 수 없어 별도의 업그레이드 칩이 필요했다. 일반 유심의 가격은 8800원 정도였으나, 모네타 용 유심 카드는 1만1000원에서 1만2800원으로 가격이 높았다.

◆ 부실한 수요 예측에 무모한 인프라 구축으로 헛돈만 날려

게다가 은행 계좌를 연결해 금융 서비스를 하려면 600원에서 800원의 월정액 요금도 내야 했다. 2G폰을 사용하던 시절엔 휴대전화 요금이 3만원만 넘어도 고객들은 큰 부담에 따른 거부감이 컸다. 이동통신사가 금융 서비스를 이용해 요금을 올리는 것이 아니냐는 눈총도 받았다.

기꺼이 비용을 내고 앞선 서비스를 이용하려던 고객들의 불만도 곳곳에서 나왔다. 모네타 서비스를 이용할 오프라인 가맹점이 예상과 달리 늘어나지 않았다.

당시 IC칩 방식 모바일뱅킹은 은행들이 개별로 이통사와 제휴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은행별로 상이한 보안 알고리즘을 채택하면서 제휴 은행 ATM만 이용할 수밖에 없는 문제도 노출됐다. 제휴 은행에서도 최신형 ATM이 아니면 사용할 수 없었다.

카페나 식당과 같은 오프라인 가맹점에서 쓰는 포스(POS) 단말기가 호환되지 않은 경우가 속출했다. 모네타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포스에 결제를 지원하는 별도의 ‘동글’을 추가로 설치해야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었다.

SK텔레콤은 직접 나서 포스용 동글을 대형 유통점과 백화점, 프랜차이즈에 4만대, 음식점 등 일반 가맹점에 40만대를 각각 설치했다. 구축 비용만 무려 800억원이 들었다. 코밴과 나이스 등 6개 부가통신사업자(VAN·밴)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인프라 구축에 총력을 다했지만, 소비자들의 수요를 감당하기엔 턱없이 모자랐다.

한국은행이 2004년 당시 발표한 ‘모바일지급결제서비스 현황’ 보고서를 보면, 모네타 서비스는 2003년 말 기준 가입고객 300만명을 확보했다. 그러나 실제 이용 고객은 10만명 정도에 그쳤다. 이용금액은 연간 60억원. 당시 모바일 결제 시장 전체 규모를 약 800억원 정도로 추산했던 상황임을 고려하면 모네타의 점유율은 7.5% 수준에 머물렀다.

◆ 싹만 틔우고 피지 못한 채 '불법 송금' 사고로 금융시장서 퇴출

이렇게 인프라 구축에 어려움을 겪는 와중에 터진 불법인출 사고(2004년)는 모네타 서비스가 폐기되는데 결정타를 날렸다.

불법 인출자가 모네타캐시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의 예금계좌번호, 비밀번호 등 개인정보를 입수한 뒤 모네타캐시 서비스를 신청하고, 예금계좌에서 불법 인출을 했다. 이 사고로 6개 은행 고객 11명의 예금계좌에서 3600만원의 예금이 인출돼 4명의 각기 다른 사람 명의의 계좌로 불법 송금됐다.

요즘 상황으로 보면 신용카드 개인정보가 유출돼 불법 인출 사고가 난 것이다. 결국 SKT는 불법 인출 피해자에게 전액 보상금을 제공하고, 송금 서비스를 중단했다.

이후 2005년 SKT는 모네타사업팀을 커머스사업본부로 편입해 지위를 낮추고, 모네타사업본부장 차진석 상무를 SK㈜ 자금팀으로 인사 조처했다. 2006년엔 커머스사업본부마저 해체되면서 모네타 사업은 실질적인 종료 수순에 들어갔다. 모네타의 2006년 퇴장은 SK와 SKT 입장에선 속이 쓰릴 수밖에 없다. 불과 몇 개월 후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아이폰(2007년 1월) 내놓으면 스마트폰 대중화 시대를 열었다.

IT업계 관계자는 “당시 모바일 결제 시장이 제대로 성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안전성 문제가 불거지면서 소비자들로부터 외면하기 시작했다”며 “SKT가 발 빠르게 모바일 결제시장에 진출한 것은 분명하지만, 잘못된 수요 예측과 잘못된 가격 정책 등으로 실패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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