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금융춘몽

'승부사' 최태원 회장의 아픈 손가락 <에필로그>

김태환 기자입력 2020-09-09 13:54:48
SK하이닉스 인수 '신의 한 수'로 평가…"SK 단숨에 재계 2위 등극" 금융 이해 적고 돌쇠 스타일로 핀테크ㆍ카드업ㆍ인터넷은행 모두 '좌절' 끝나지 않은 꿈 '핀크'…최 회장 승부사 기질 통할지 주목

[최태원 SK그룹 회장, 출처=SK그룹 제공]


“승부사.”

최태원 SK 회장에게 붙은 별명이다. 최 회장의 경영 방식은 공격적인 인수·합병(M&A)과 거침없는 투자로 새로운 사업에 발 빠르게 진출하고, 사업 구조를 다각화해 성장하는 방식이다. 최 회장이 주도적으로 추진한 SK하이닉스 인수는 지금도 ‘신의 한 수’로 평가받고 있다.

이런 최태원 회장에게도 ‘아픈 손가락’이 있다. 금융 분야다. 하나금융그룹과 함께 투자한 하나SK카드는 낮은 시장지배력을 극복하지 못하고 적자 행진을 이어가다가 최 회장이 자금 횡령 혐의로 구속되면서 성장 동력을 완전히 잃었다. 그나마 가지고 있던 SK증권마저도 지주사 전환으로 매각해야 했다. 두 차례에 걸쳐 진출을 시도한 인터넷전문은행 역시 허탈하게 무산됐고 최후의 보루인 핀테크 기업 ‘핀크’는 적자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 승부사 최태원의 ‘하이닉스 신화’

시가총액 141조원. 국내 재계서열 시가총액 기준 2위. 자산순위 기준 3위의 대규모 기업 그룹집단 SK. SK그룹은 1970년대만 해도 재계 서열 10위에 겨우 이름을 올렸던 기업이다. 이로부터 50여년이 지난 현시점에서 SK그룹은 가파른 성장을 이뤄내 어느새 재계 2~3위를 다투는 기업으로 거듭났다.

SK그룹은 1990년대 초 제2이동통신 사업권을 획득해 통신 시장에 발을 들였다. 1994년에는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해 규모를 확장했고 이후 스피드 011로 자리를 굳힌 SKT는 이제 업계 1위의 통신기업으로 성장해 SK그룹의 기둥 역할을 하고 있다. 여기에 정유사업을 펼치는 SK이노베이션이 든든하게 뒷받침하면서 SK그룹은 재계에서의 탄탄한 입지를 다졌다.

SK그룹의 폭풍 성장 배경엔 SKT와 SK이노베이션이 자리한다. 두 기업은 이동통신시장과 정유시장의 과반을 점유한 상태로 SK그룹의 안정적인 자금원 역할을 한다. 두 업종 모두 안전하면서도 막대한 자금을 공급하는 ‘캐시카우’ 사업으로, SK그룹이 다른 그룹보다 월등히 높은 현금 동원력을 갖추게 하는 배경이기도 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최태원 회장은 2011년 SK하이닉스의 M&A를 단행한다. 당시 반도체 시장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탓에 전 세계 경기가 위축돼 반도체 공급이 수요를 초과한 상태였다. 반도체 분야의 매력도가 지금처럼 높지 않은 가운데 막대한 투자를 병행해야 하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반도체 사업에 투자해야 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공장 하나를 짓는 데만 4조원에 육박하는 자금이 투입됐다. 자칫 잘못 인수하면 모기업까지 위태로운 상황에 빠질 수 있었다.

하지만 최 회장은 M&A를 밀어붙였다. SK그룹 주력사인 SKT를 앞세워 2011년 하이닉스 인수의향서를 제출하고, 3조4266억원에 하이닉스를 인수하는 데 성공했다. SK그룹은 하이닉스 인수로 에너지·화학과 이동통신·정보통신기술(ICT)에 이어 ‘반도체’라는 새로운 기둥을 만들어 SK그룹이 한 단계 도약할 계기를 마련했다.

3조4000억원에 인수한 SK하이닉스는 올해 2분기 기준 시가총액이 54조6000억원, 매출액 8조3000억원을 내는 효자가 됐다. 최근 반도체 경기 불황으로 매출이 다소 감소했으나 코스피 시가총액 2위 기업의 자리를 끝내 지켜내고 있다.

최 회장은 반도체 기초재료인 실리콘웨이퍼를 만드는 회사 ‘실트론’을 인수해 SK하이닉스와 시너지를 창출하기도 했다. 인수 당시 총 1조425억원을 들인 SK실트론의 최근 기업가치는 4조원 이상 될 것으로 평가받는다.

최 회장은 바이오 부문의 투자도 적극적으로 늘리고 있다. SK는 SK바이오팜과 더불어 SK바이오텍, SK케미칼을 활용해 공격적인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최 회장은 신약·의약 중간체를 연구‧개발하는 SK바이오팜, 국내·유럽 생산을 담당하는 SK바이오텍, 미국 생산을 맡은 앰팩 등 ‘3각 편대’ 사업구조를 마련했다.

◆ 반복된 실수와 실패…멀어진 금융의 꿈

최 회장의 승부사 호칭에도 ‘옥에 티’는 있다. 금융 분야다. 하나SK카드의 부진과 인터넷전문은행 진출 실패는 SK그룹의 흑역사로 기록됐다. 규제산업인 금융업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황에서 돌쇠 같은 최 회장의 스타일이 실패가 불가피했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금융사업은 SK그룹의 핵심사업인 이동통신, 에너지 업종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지속적인 자금 흐름을 만들어가는 ‘캐시카우’ 역할이 바로 그것이다. 금융업을 가지면 금융상품을 이용하는 투자자와 소비자들로부터 지속적인 현금 유입이 이뤄진다. 이는 그룹사의 자본력을 받쳐주는 ‘뒷배’가 생긴다는 의미다.

하지만 국내 6대 그룹 중 SK그룹만이 제대로 된 금융사업을 펼치지 못하고 있다. 지주사 전환 문제로 SK증권마저도 처분했다.

SK그룹이 금융업에 진출할 여러 번의 기회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번번이 시장 흐름을 정확히 읽어내지 못한 경영 판단을 하거나 심지어 최 회장이 구속되는 악재를 이겨내지 못했다. 고심 끝에 내놓은 핀테크 플랫폼 ‘핀크’ 역시 시작할 당시엔 시장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지만, 예상보다 느린 성장으로 최 회장의 애간장을 태우고 있다.

최 회장의 ‘아픈 손가락’ 하나SK카드는 2010년 2월 SKT와 하나금융투자의 합작 투자로 설립됐다. 당시 SK와 하나금융은 끈끈한 동맹이 형성돼 있었다. 2003년 초 SK글로벌(현 SK네트웍스) 분식회계 사태 시 SK글로벌의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을 주도해 파산 위기로까지 내몰렸던 SK글로벌을 하나은행이 구해낸 것이 대표적 사례다.

하나SK카드 합작 설립은 반대로 SKT가 하나금융을 도운 사례다. 하나금융이 카드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가운데, 이동통신사 1위 SKT의 2600만명 가입자를 활용해 잠재적 고객을 확보할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하지만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2013년 1월 횡령 혐의로 징역 4년의 유죄 판결을 받아 법정 구속되면서 동맹의 고리가 약해졌다. 2015년 8월 광복 70주년 특별사면으로 출소할 때까지 2년 7개월의 경영 공백 기간은 경쟁사 추월에 주력해야 했던 하나SK카드의 힘을 빼놓는 부작용을 냈다.

출소 이후 두 차례나 추진한 인터넷전문은행 인가 획득 도전도 끝내 무산됐다. 2015년 8월 인터파크와 함께 진영을 꾸리고 ‘KT 컨소시엄’ 및 ‘카카오 컨소시엄’ 등과 경쟁을 벌였지만, 당시 규제 등의 영향을 받아 대기업인 SKT가 인터넷전문은행의 지분을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

은행법상 산업자본은 의결권 있는 지분 4%와 의결권 없는 지분 6% 등 최대 10%까지만 지분을 보유할 수 있는 ‘은산분리법’ 탓에 SK가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려웠던 구조였다.

2019년 2월 SKT는 하나금융그룹, 키움증권 등과 손을 잡고 두 번째로 인터넷전문은행 인가 획득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SKT가 ICT 분야에서 최고의 경쟁력을 갖췄다고 평가받고도, 금융위원회로부터 '사업계획의 혁신성과 실현 가능성 미흡'이라는 충격적인 결과를 통보받은 채로 두 번째 고배를 마셨다.

◆ 비장의 카드 핀크… 너만 믿기엔 ‘글쎄’

최 회장의 ‘금융업 진출’ 꿈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SK그룹은 하나금융그룹과 합작 투자로 핀테크 플랫폼 ‘핀크’를 선보인 후, 비금융 데이터를 활용해 새롭게 신용평가를 하고 상품을 설계해 차별화를 보이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처음 기대와 달리 핀크는 출범 이후 누적 적자만 512억원을 기록하는 등 초라한 성적을 내고 있다. 설립 당시 자본금 500억원은 완전히 잠식됐다. 지난해 유상증자로 긴급히 500억원의 자금을 수혈했지만, 출범 후 3년간 매출이 없었던 현실을 고려하면 마땅한 킬러 서비스가 없는 핀크가 시장에서 얼마나 더 오래 버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최근 핀크는 소액 대출, 맞춤 보험 추천, 비금융 데이터 활용 신용등급 제공과 같은 새로운 개념의 서비스들을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있다. 

최태원 회장의 승부사 기질이 통신과 석유‧화학, 반도체를 넘어 금융에서도 통하는 시점이 언제가 될지에 관련 업계가 주목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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