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상처로 얼룩진 이름 '한국테크놀로지'

이범종 기자입력 2020-10-25 17:03:22

[이범종 기자]

한국테크놀로지는 조현범·조현식 형제의 경영권 분쟁과 배임·횡령 재판, 하청업체 갈등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줄줄이 걸린 송사와 비난 끝에 이름을 고치기로 했다. 사명을 바꾼 지 1년 5개월 만이다.

다시 첫 문장을 읽어주기 바란다. 이상하지 않은가. 이 회사의 정확한 이름은 옛 한국타이어 지주사 ‘한국테크놀로지그룹(옛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이다. 여기서 ‘그룹’이 빠지는 순간, 의혹과 비판의 눈길은 같은 이름을 먼저 써 온 중소기업 ‘한국테크놀로지’가 고스란히 떠안는다. 인사이트코리아가 올해 2월 20대 1000명에게 물은 결과, 95.8%가 두 회사를 같은 곳이라고 인식했다.

사람은 자기 정체성을 이름으로 말한다. 김춘수는 시 ‘꽃’에서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던 상대의 이름을 부르자 “나에게 다가와 꽃이 되었다”고 말한다. 이름이 있어야 의미 있는 존재가 된다는 뜻이다. 그러니 시인도 “나의 이 빛깔과 향기(정체성)에 알맞는” 이름을 불러달라고 한다. 서로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픈 욕구다.

명성에 흥망이 달린 기업도 이름이 중요하다. 한국테크놀로지는 1997년 세워진 비전텔레콤이 2012년 사명을 바꾼 회사다. 주력 사업을 신생에너지에서 자동차 부품으로 옮기고 인공지능(AI) 사업도 한다. 회사의 빛깔과 향기에 맞춘 이름이었다.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도 이 이름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지난해 5월 사명을 한국테크놀로지그룹으로 바꿨다. 타이어와 배터리, 정보기술(IT) 등 글로벌 최상위 혁신기업으로 성장하겠다고 했다. 나의 빛깔과 향기도 미래 기술을 향하고 있다는 태도다.

동일한 상호에 위기를 느낀 중소기업 한국테크놀로지는 그해 11월 법원에 상호사용금지 가처분을 신청했고, 올해 5월 인용됐다. 법원은 강제집행으로 한국테크놀로지그룹 건물 내 상호를 떼어냈다. 20일에는 사명 사용 시 하루 당 일정액을 한국테크놀로지 측에 배상하라는 간접강제 결정도 나왔다. 통상적인 결정을 보면 한 해 기준 십수억원 규모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측은 이름을 바꾼 이유에 대해 “내부 검토 결과 법적인 문제가 없었다”는 말만 해왔다. 22개월이나 고민하고 선택한 이름이 왜 하필 중소기업 사명인지에 대한 이유와 거리가 멀다. 재계에선 “미래지향적인 사명을 쓰고 싶은데 중소기업 이름이라 부담 없이 사용하지 않았겠느냐”는 관측이 나온다. 자기 이름엔 온갖 의미를 부여하면서 남의 이름은 가볍게 본다는 비판이다.

법원 역시 5월 “자동차 부품류의 제조·판매업 분야에서 채권자(한국테크놀로지)가 이미 상당한 명성을 쌓아가고 있었다”며 “채무자(한국테크놀로지그룹)의 상호 사용에 있어서 부정한 목적이 인정된다”고 결론 냈다.

결국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은 새 사명 시안을 만들고 등록 절차도 준비하고 있다. 확실한 건 한국테크놀로지가 상처로 얼룩졌다는 점이다. 대기업에게 이름 없는 ‘하나의 몸짓’ 취급 당한 중소기업의 현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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