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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의결권, 대세 지장 없을 때만 ‘반대’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김성훈 기자
2020-11-02 15:25:43

LG화학 물적분할, 국민연금 반대에도 82% 찬성 통과

동아제약 지주사 전환, 국민연금 반대에도 73% 찬성

현대중공업 물적분할 땐 사활 건 노조 반대에도 ‘찬성’

대세 지장 없을 땐 '반대', 중요할 땐 '대기업 편' 의혹

[사진=국민연금]

지난달 LG화학의 물적분할 계획안이 참석 주식 기준 82% 이상의 찬성으로 통과했다. 국민연금공단의 반대표가 무색한 결과였다. 지난 2013년 동아제약 지주사 전환 때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민연금이 안건 통과 가능성이 클 때만 명분을 위해 반대표를 행사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달 30일 국민연금이 반대한 LG화학 물적분할 안건이 임시 주주총회를 통과했다. 찬성률은 출석 주식 수 기준 82.3%. 약 10%의 지분을 가진 국민연금 반대표가 안건 통과에 미친 영향은 사실상 없었다.

유사한 상황은 지난 2013년 1월 동아제약의 지주사 전환 때에도 벌어졌다. 당시 국민연금은 동아제약 지분 약 9.5%를 보유한 3대 주주였다. 국민연금은 전문위원회를 열고 “일반 주주가치는 떨어트리고 경영진에게만 이득일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며 동아제약의 지주사 전환을 반대했다. 하지만 동아제약의 지주회사 전환을 위한 회사 분할안은 주주총회에서 참석 주주 73%의 찬성으로 가결됐다.

◆주주가치보다 '명분' 더 중요시 여긴 결정

두 사례의 공통점은 국민연금 반대에도 안건이 통과됐다는 점 외에 하나가 더 있다. 국민연금이 반대하기 전부터 시장에서는 해당 안건의 승인 가능성을 매우 크게 봤다는 것이다.

LG화학 물적분할 건의 경우 ISS·대신지배구조연구소·한국기업지배구조원 등 주요 의결권 자문사들이 찬성을 권고하면서 외국인과 기관투자자의 찬성이 거의 확실시됐다. LG화학 측 우호 지분과 외국인·기관의 지분이 더해지면 안건 승인에는 무리가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동아제약의 경우도 이와 유사하다. 당시 약 4%의 지분을 가진 녹십자가 캐스팅보트로 지목됐는데 강신호 동아제약 회장과 고(故) 허영섭 녹십자 회장의 유대 관계를 고려할 때 녹십자가 찬성표를 행사할 가능성이 크다는 예상이 많았다. 실제로 녹십자는 동아제약의 지주사 전환에 찬성했다.

이 같은 사례가 이어지면서 투자업계 일각에서는 “국민연금이 대세에 지장이 없을 때만 명분을 내세워 반대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국민연금이 반대표를 행사해도 안건이 통과될 것이라는 점을 예상하고 개인투자자와 국민 여론을 반영해 반대했다는 것이다.

현대중공업 물적분할 사례는 이러한 주장에 힘을 싣는다. 2019년 5월 현대중공업은 고용불안이 예상된다는 노조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주주총회 위치까지 바꾸며 물적분할 안건을 상정했다. 의결권 자문사들이 안건에 찬성하긴 했지만 노조가 필사적으로 반대하면서 국민적인 관심이 현대중공업에 쏠렸고, 물적분할을 위한 공개적 명분이 더 필요한 상황이 됐다.

앞선 두 사례와 달리 국민연금은 현대중공업 물적분할 캐스팅보트였다. 2019년 3월 말 기준 현대중공업 측 우호 지분은 현대중공업지주 30.95%·KCC 6.6%·아산사회복지재단 2.38%·아산나눔재단 0.61% 등이었다. 우호 지분을 모두 더하면 40.54%. 나머지 약 45%의 지분은 소액주주가 보유했고, 노조의 우리사주 지분은 3%였다. 9.35%의 지분을 가진 국민연금 결정이 명분과 실제 안건 통과에 있어서 모두 중요했던 것. LG화학 때와는 다르게 국민연금은 찬성표를 던졌고, 분할 계획서 승인 안건은 참석 주식 수의 99.8%로 통과됐다.

국민연금은 찬성 사유에 대해 "위원들도 물적분할의 필요성에 대해 인지하고 있고 이로 인해 주주 권리가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지만 이는 분할 신설회사가 건전한 지배구조를 갖추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면 충분히 보완할 수 있는 수준"이라며 "물적분할이 주주 권리를 약화시킨다는 이유로 반대를 한다면, 그동안 기업들이 했던 물적분할이나 향후 있을 물적분할도 문제로 삼게 되는 것인데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주주가치 희석을 이유로 반대한 LG화학 물적분할 건과는 사뭇 다른 판단이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현대중공업 건도 LG화학 때와 같이 반대가 강하고, 여론이 집중된 안건이었지만 국민연금 반대로 안건이 부결될 수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고 분석했다. 국민연금이 이른바 ‘하나마나’한 투표에서는 여론의 손을, 중요한 안건에서는 대기업의 손을 들어준다는 의혹이 나오는 이유다.

LG화학은 지난달 30일 전지부문 물적분할을 위한 임시 주주총회를 가졌다. 국민연금이 주주가치 희석문제를 들어 반대의사를 표명했지만 참석 주식 기준 82% 이상의 찬성으로 물적분할이 승인됐다.[사진=LG화학]


◆의결권 행사 이유, 구체적 설명 부족

감사원도 국민연금의 명확하지 않은 스튜어드십 코드 행사를 지적한 바 있다. 감사원의 지난 7월 감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지분 보유 기업의 이사 선임 때 기업가치 훼손 이력이 있는 경우에만 반대할 수 있도록 규정을 만들었지만 이를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특히 A기업의 경우 이사 후보 선임을 두고 수 년에 걸쳐 찬성과 반대를 일관성 없이 반복했다.

의결권 행사 이유가 너무 짧다는 점도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이행에 대한 의구심을 증폭시킨다.

한국 스튜어드십 코드가 발표한 스튜어드십 코드 7원칙에 따르면 기관은 의결권 행사의 적정성을 파악할 수 있도록 의결권 행사의 구체적인 내용과 그 사유를 함께 공개해야 한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대부분의 사유 설명을 한 두 줄로 끝냈다. 찬성 혹은 반대 이유를 한 줄로 설명한 후 소수 의견에 대해 언급하는 식이다.

이번 LG화학 때에는 "취지 및 목적에는 공감하나 지분가치 희석 가능성 등 국민연금의 주주가치 훼손 우려가 있다"는 것이 반대 사유의 전부였다.

현재 국민연금이 운용으로 쌓은 수익과 연금보험료를 더한 총액은 1000조1000억원이다. 여기서 연금급여와 관리운영비를 제외한 776조6000억원을 국민의 은퇴 후를 대비하기 위해 운용되는 자금이다.

지난 8월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는 "국민연금이 사실상 수탁자 책임을 방기하고 스튜어드십 코드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실망스러움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명분쌓기 용 스튜어드십 코드가 지속된다면 국민연금이 국민의 노후자금을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지 의심을 품을 수밖에 없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지난 2018년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이후 국민연금의 애매한 태도는 국감에서도 꾸준히 지적될 만큼 문제가 되고 있다”며 “이제는 면피를 위한 선택이나 ‘눈 가리고 아웅’ 식 결정보다는 투자자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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