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지주회사의 과제

​‘만년 저평가’ 지주사…LG가 헤지펀드 공격 받은 이유

이성규 기자입력 2020-12-22 04:27:00
상장 자회사 많고 지분율 낮은 지주사, 시총 낮은 수준 거래 상장 자회사 많고 지분율 낮은 지주사, 시총 낮은 수준 거래 정부 지배구조 투명성 확보 VS 재계 경영권 방어 우선 정부 지배구조 투명성 확보 VS 재계 경영권 방어 우선 경제3법, 보완적 규제-투기자본 공격 우려 충돌 경제3법, 보완적 규제-투기자본 공격 우려 충돌 현금흐름 악순환 반복…행동주의펀드, 이유 있는 움직임 현금흐름 악순환 반복…행동주의펀드, 이유 있는 움직임

[LG그룹 본사. 사진=데일리동방 DB]

지주사 체제 도입 후 20년 넘은 현재, 출발이 불안했던 만큼 이를 보완한다는 명목 아래 관련 규제는 강화되고 있다. 재계는 비판하고 나섰지만 지주사 저평가, 더 나아가 코리아 디스카운트 문제를 극복하지 못한 책임도 있다. 소유와 지배의 괴리를 넓히는 괴물이 된 지주사 체제는 각종 위협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지주사 불완전성은 기업들이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문제다. <편집자>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국내 기업의 원활한 구조조정과 지배구조 투명성 확보를 위해 추진된 지주회사 체제는 그 진가를 100%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이끄는 선두주자가 되고 투기세력 공격으로부터 취약해졌다. ‘적대적 인수합병(M&A)’에 중점을 뒀던 재계가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서 현 상황을 자초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14일(현지시간) 주요 외신들은 미국 행동주의 헤지펀드인 화이트박스 어드바이저스가 LG그룹 지주사인 ㈜LG에 그룹 계열분리를 반대하는 서한을 보냈다고 보도했다. LG그룹은 지난달 말 LG상사와 LG하우시스, 실리콘웍스 등 5개 계열사를 중심으로 별도 지주사를 신규 설립해 내년 5월부터 독립경영 체제에 들어가는 계획을 발표했다.

화이트박스는 계열분리 계획이 소액주주 가치 창출에 반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 현재 순자산가치 대비 69% 수준에서 거래되는 시장가치를 끌어올리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뿐만 아니라 가족을 우선시하는 계획이 ‘코리아 디스카운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LG그룹은 계열분리를 통해 전자, 화학, 통신 등 사업분야에 집중할 수 있어 기업가치가 높아질 것이라고 반박했다.

◆지주사 시총, 상장 자회사 합산가치보다 낮아

LG그룹은 국내 그룹사 중 가장 우수한 지배구조를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LG그룹이 공격 대상에 오른 것은 ‘우수성’ 대비 그룹 지주사인 ㈜LG가 여타 그룹 지주사 대비 유독 제 가치를 평가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지주사는 여러 자회사 지분과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주가수익비율(PER) 등 수익성 지표보다는 주당순자산비율(PBR, 지주사는 NAV로 평가하나 PBR로 대체) 등 자산가치 지표를 기준으로 평가한다.

지난 18일 종가 기준 LG의 PBR(장부가치는 2019년 말 기준)은 0.73배다. 화이트박스가 지적한 ‘69%(0.69배)'와 유사한 수준이다.

국내 여타 그룹 지주사들의 PBR을 보면 CJ 0.64배, GS 0.41배, SK 0.93배, 롯데지주 0.42배, 한화 0.58배, 현대중공업지주 0.59배다. PBR 기준으로만 본다면 LG는 오히려 선전하는 축에 속한다.

물론 LG의 계열분리 이벤트가 화이트박스를 움직이게 한 가장 큰 이유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화이트박스는 그 이전부터 LG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다. 즉 화이트박스가 지적한 ‘69%’는 표면적일 뿐 본래 의도는 감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LG를 포함한 지주사(CJ, GS, SK, 롯데지주, 한화, 현대중공업지주)의 상장 자회사 가치(지분율 반영)만 합산한 결과 자회사 합산 가치 대비 지주사 시가총액이 가장 낮은 곳은 LG(0.37배)인 것으로 나타났다. LG의 주요 상장 계열사(LG전자, LG화학, LG유플러스, LG하우시스, LG생활건강, LG상사, 지투알, 실리콘웍스) 지분 합산 가치는 36조원 수준이나 지주사 시가총액은 13조5000억원에 불과하다.

상장 자회사 가치 대비 지주사 시총이 가장 높은 곳은 현대중공업지주(1.67배)였으며 이어 GS(1.62배), 롯데지주(0.78배), SK(0.68배), CJ(0.55배), 한화(0.53배) 순으로 나타났다. 오히려 핵심계열사를 비상장사로 둔 현대중공업지주(현대오일뱅크)와 GS(GS에너지)가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세부적으로 보면 상장 자회사가 많고 자회사 지분율이 낮을수록 지주사 시총은 자회사 가치 대비 낮은 수준에서 거래된다. 지주사별 상장 자회사 평균 지분율(단순 산술평균 기준)은 LG가 33.25%로 지주사 중 한화(29.7%)를 제외하고 가장 낮았다. 다만 한화의 상장 자회사는 3개사로 LG(8개사) 대비 현저히 적다.
 

 

◆지주사 저평가, 소유·지배 괴리 확대...현금흐름 악순환

이 결과는 국내 지주사 출범 배경과 연관지어 볼 필요가 있다. 국내에 지주사 제도가 도입된 1999년 당시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은 이전부터 경제력 집중을 억제할 수 있는 독점금지법 등 장치가 마련돼 있었다. 여전히 이들 국가에 지주사에 대한 특별한 규제가 없는 이유다.

대리인 문제로 투자자 손실 관련 소송 가능성이 높고 배상 금액도 큰 탓에 지주사 설립 시 자회사 지분을 100% 보유했다. 지주사만 상장하기 때문에 투자자 역시 지주사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미국과 유럽의 모든 지주사들이 그 가치를 제대로 받는 것은 아니지만 국내처럼 ‘만년 저평가’ 수준은 아니다. 심지어 1997년 지주사 체제를 도입한 일본에서도 지주사 디스카운트 현상은 두드러지지 않는다. 유독 한국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다.

국내 지주사 출범은 아시아 외환위기 후 국내 기업의 원활한 구조조정 필요성, 그룹사들의 지배구조 투명성 확보를 위한 조치였다. 당시 재계에서도 지주체제 도입을 요구했으나 가장 큰 목적은 적대적 인수합병(M&A) 등에 대한 경영권 방어였다. 정부와 투자자가 지주체제 도입을 요구한 배경과는 분명 달랐던 것이다.
 

 

지주체제 도입으로 국내 주요 그룹사들은 적은 지분으로도 계열사들에 대한 지배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만큼 문어발식 사업을 진행할 수 있는 길도 열렸다. 최근 경제 3법(상법, 공정거래법, 금융그룹 감독법)이 통과되면서 ‘국내 기업 옥죄기’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지주사는 그룹을 지배하고 있는 만큼 투기자본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된다는 우려도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이전까지 지주사의 자회사에 대한 출자요건은 완화되는 추세를 보였다. 많은 국내 기업들이 지주체제로 전환한 배경이다. 이 과정에서 지주사의 자회사 지배력은 더 약해질 수밖에 없었고 소유와 지배 괴리도는 확대됐다. 자회사 배당에 의존하는 지주사 현금흐름은 약해지고 자금조달력도 자회사 대비 떨어지기 시작했다. 반면 지주사에 대한 대주주 경영권은 안정화되는 상황으로 전개됐다.

경제력 집중을 막기 위한 제도가 없는 상황에서 지주체제가 도입되자 보완적 규제는 불가피했다고 볼 수 있다. 지주사 도입 20년이 지난 현재도 각종 규제가 난무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국내 지주사 저평가 문제는 ‘첫 단추’를 잘못 끼운 대가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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