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 무시한 사실상 '기업살인'…중대재해기업처벌법 논란 ‘확산’
文정부 2021 경제 법 7픽⑦

원칙 무시한 사실상 '기업살인'…중대재해기업처벌법 논란 ‘확산’

김태환 기자입력 2021-01-05 05:30:00
최대 4중 중복처벌에 재계 불만 확산···기본적인 형법 원칙 위배 기업 면책조항 신설 필요···자발적 사업장 개선에 동기부여

[출처=한국경영자총회]


인명사고가 발생하면 경영자를 구속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대한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경영자와 사업주가 책임져야 할 의무를 명확히 정하지 못한 채 법안을 마련하면서 형사처벌과 징벌적 손해배상 등 최대 4중 처벌이 가능하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법안에 경영책임자 의무의 명확성을 높이고, 면책조항을 신설해 기업들이 환경 개선에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취지는 좋지만…기본적인 법 원칙도 ‘무시’

5일 국회와 정부에 따르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기업의 안전관리 시스템 미비 등으로 사업장, 다중이용시설 등에서 인명 피해를 발생시켰을 때 법인, 사업주, 경영책임자, 정부 책임자들의 처벌을 강화하는 법안이다. 이 법안은 강은미 정의당 의원이 지난해 6월 대표발의했다.

강 의원은 제안이유에 대해 “재해가 개인의 실수에 의한 사고가 아니라 위험을 제대로 예방하고 관리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기업범죄’임을 인식하게 해 기업 등이 경제적·조직적·제도적으로 철저히 안전관리를 하도록 유도하는 입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법안에 따르면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등이 유해·위험방지의무를 위반해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하면 2년 이상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상 1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했다.

또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등이 동시에 또는 순차로 유해·위험방지의무를 위반해 사람을 2명 이상 사상에 이르게 한 때에는 형법이 규정하고 있는 경합범 가중 규정에 따르지 않고 각 죄에 정한 형의 장기 또는 다액을 합산해 가중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해당 법안에 대한 문제제기는 법조계에서 먼저 나왔다. 기본적인 법적 원칙을 위배한다는 지적이다. 제정안에 따르면 경영책임자가 지는 유해·위험방지의무를 ‘종사자 또는 이용자가 생명·신체의 안전 또는 보건위생상 위해를 입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규정돼 있는데, 이 의무가 매우 포괄적이고 추상적이다. 사실상 사업장 내에 누군가가 다치기만 하면, 무조건적으로 경영책임자를 처벌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법안대로라면 사실상 재해가 발생하기만 해도 곧바로 경영책임자가 형사책임을 지게 될 확률이 높다”며 “이는 ‘사실상 결과책임’을 인정하는 것이며 ‘책임이 없으면 형벌이 없다’는 형법상 책임주의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명확한 책임자 의무를 산정하지 못한 탓에 중복 규제에 대한 문제제기도 나타난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에는 △안전보건관리규정 작성 △안전보건교육 실시 △유해위험 방지 조치 △도급 시 산재예방 등 사업주에게 근로자에 대한 안전보장 의무 등이 이미 명시돼 있다. 사실상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도입되면 경영책임자의 경우 중복규제를 받게 되는 셈이다.

특히 법안이 사업장에서의 재해가 사고가 아닌 ‘기업 살인’이며, 경영책임자에게 형벌을 부과하고 있어 경영자에 대한 과도한 처벌이 나타난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경영책임자를 형사 처벌하는 사례는 세계적으로도 극히 드물다. 영국은 벌금형이 있지만, 경영책임자 사람에 대한 형사처벌 조항은 없으며, 캐나다와 호주 일부 주에서만 시행되고 있다.

감독 또는 인·허가 권한을 가진 공무원에 대한 처벌 규정도 논란이 되고 있다. 만일 공사장에서 인명사고가 나타나게 되면, 공사를 허가해준 지역자치단체장이나 처벌 대상이 될 수 있게 된다.

재계 관계자는 “법안이 원안대로 통과된다면 사고가 한번 터지만 대표자 형사 처벌, 벌금, 행정 제재, 징벌적 손해배상 등 사실상 4중 처벌을 받게 된다”며 “당장 금전적 손실과 경영활동 위축은 물론이며 책임자에 대한 징역형이 부과되면 경영자의 부재로 후속대처가 나타나지 못하는 등 2차 3차 문제로 확산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면책조항 만들어 기업 동기 부여 필요

지난해 12월3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는 중대재해처벌법 심사를 통해 모호한 법안 적용범위를 다듬었다. 중대 재해의 정의에 대해 ‘1인 이상 사망’으로 합의했으며 처벌 대상도 ‘법인의 대표이사 및 이사’에서 ‘대표 또는 안전관리이사’로 수정했다. 법안 적용 범위를 줄이고 규제를 다소 완화시켰지만 큰 틀은 변함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기업들의 면책을 위한 조항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법안의 의도대로 시설을 개선하고 안전 조치에 신경쓰는 기업에게는 책임을 덜어 동기를 부여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익명을 요청한 법조계 관계자는 “기업의 의무만 강조하고 처벌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기업들은 결국 징벌적 배상에 따른 대응에만 신경쓰고 정작 안전한 사업장을 만드는데 소홀할 수 있다”면서 “이는 결국 법안의 취지가 무색해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기에 안전 조치에 신경쓰고 사업장의 시설을 개선하는 기업에게는 법안 적용을 하지 않는 등의 면책조항이 필요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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