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기아-애플 협상, ‘끝날 때까진 끝난 게 아니다’

현대차·기아가 애플과의 협상 진행이 없다고 밝혔지만, 협상이 아직 끝난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이대로 협상을 끝내기에는 양측 모두 아쉬움이 크기 때문에 재협상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현대차그룹과 애플의 협상 중단은 지난 주말부터 외신에서 제기됐다.

지난 6일 블룸버그통신은 “애플과 현대차그룹의 아이카(i-car) 생산 관련 협상이 최근 중단됐다”고 보도했다. 7일에는 블룸버그에 이어 자동차 전문 매체 오토모티브 뉴스도 협상 불발 관련 추종 보도를 냈다.

그리고 8일 현대차와 기아는 직접 공시를 통해 “애플과 자율주행차량 개발에 대한 협의를 진행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현대차그룹은 협의를 하다 중단됐는지, 아니면 처음부처 협의가 없었는지에 대해 구체적인 내용 없이 현재는 아니라고만 밝힌 것이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애플과 협상은 있었지만 현재는 중단됐기 때문에 이런 내용의 공시를 한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협상 불발 원인을 ‘애플의 신비주의’로 꼽았다.

극비리에 진행 중이던 협상이 지나치게 노출된 것에 대해 애플이 큰 불만을 제기하면서 협상이 깨졌다는 분석이다. 지난달 8일부터 국내 언론과 증권업계를 중심으로 기아와 애플의 협력에 대한 전망이 계속해서 나왔고, 애플이 이를 문제 삼았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애플은 협력사에 업계 최고 수준의 비밀유지 계약을 요구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협력사는 애플만의 보안 유지 강령을 따라야 하고 비밀이 누설될 경우 계약 파기는 물론 엄청난 수준의 위약금을 물어야 한다.

외신들은 현대차·기아와 애플의 재협상 가능성에 대해 불확실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국내 전문가들과 투자업계 관계자들은 양측이 다시 협상 테이블에 앉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공시에서도 ‘자율주행차’ 관련 협의를 하지 않는다고 했지, 다른 부문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며 “전기차에 대한 협상은 계속되는 중일 수도 있다”고 전했다.

이 같은 의견은 현대차와 기아가 전용 전기차 개발 플랫폼을 보유하고 있는 등 애플에 있어 훌륭한 파트너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을 근거로 한다.

이상헌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현대차와 기아의 E-GMP(Electric Global Modular Platform)는 리막과 카누의 장점을 모은 출력·충전·안정성 부문에서 높은 성능을 보유한 전기차 플랫폼”이라며 “자율주행 전기차를 만들고자 하는 애플과 같은 빅테크 기업은 현대차의 전기차 플랫폼을 높이 평가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현재 세계적으로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보유한 완성차 기업은 현대차·기아 외에 GM, 폭스바겐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자체 전기차 플랫폼이 없는 경우 전기차 신제품 개발에 더 큰 비용을 들여야할 뿐만 아니라 시간도 오래 걸린다.

앞서 교섭 중이라고 보도된 일본 완성차업체들의 경우 전기차 전용 플랫폼이 없어 애플의 2025년 출시 계획을 맞추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애플과의 협상 결렬로 상대적으로 손실이 큰 현대차·기아가 적극적으로 재협상을 추진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하나의 계약을 맺을 때 여러 업체와 동시에 접촉하는 애플과는 달리 현대차·기아는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의 도약을 위해 애플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자동차뿐만 아니라 도심 항공 모빌리티·로보틱스 부문을 미래 수익 사업으로 육성하고 있는데, 애플과 협업할 경우 현대차그룹 계획이 더욱 앞당겨질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이번 공시는 여론을 진정시키기 위한 조치이거나 협력 관계 등에 대한 주도권 싸움의 일환일 수 있다”며 “어느 쪽이든 양사의 협상이 이대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전했다.